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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글이 늘 좋은 건 아니었다

너무 솔직하면 글이 재미없는 이유

by 달보


"저는 솔직하게 쓴 글은 읽기 싫어요. 너무 솔직하면 재미없거든요."

글쓰기 모임을 함께 하는 분이 말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쳤다.


처음 글을 쓸 땐 솔직하지 못했다. 남의 생각을 내 것처럼 착각하고, 그럴듯한 문장을 가져다 쓰기 바빴다. 당시엔 그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것이라 믿었다. 처음부터 노트북 키보드에 손가락만 올리면 글이 술술 써지길래 혹시 재능이라도 있는 걸까 싶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내 글에서 이질감을 느꼈다. 마치 그 이질감을 경험하기 위해 글을 써온 것처럼, 애초부터 예정이라도 되어 있던 일인 양 자연스레 다가왔다.


그 후로는 솔직한 글을 쓰려고 부단히 노력해왔다. 비록 어설프더라도 진짜 내 안에 든 것들을 토대로 글을 쓰고 싶었다. 지난날들의 과정이 떠올라 그분의 말이 새삼 깊이 와닿았다.




글쓰기 모임의 리더로서 진행에 집중해야 했지만,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솔직함'에 대해 곱씹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말을 그냥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왠지 곱게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솔직한 글이 왜 읽기 싫을까. 나는 왜 그 말에 이토록 사로잡힌 걸까.


주로 에세이를 쓰는 나에게 솔직함은 필수였다. 하지만 솔직하게 쓴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글로 옮기려 애를 써도, 막상 손가락이 키보드를 눌러 만든 글에는 어쩔 수 없이 왜곡이 섞였다. 기억을 더듬어 단어를 고르는 순간부터 이미 사실은 조금씩 변질되었다. 그 모든 걸 일일이 걸러낼 수도 없어서, 찝찝한 마음을 안고 글을 매듭지었던 순간들이 적지 않다.


어쩌면 '솔직하게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아예 불가능한 일일지도 몰랐다. 우리는 기억과 감각에 남은 조각들을 재료 삼아 글을 쓰지만,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뭔가를 덧대거나 빠뜨린다. 글쓴이는 사실을 기반으로 쓴다고 믿지만, 결국 그것도 하나의 관념일 뿐이다. 한 번 내 안에 들어왔다가 나온 것에는 반드시 원래의 색이 변형된다. 아무리 비싸고 좋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도 렌즈 너머의 세상을 온전히 담을 수 없는 것처럼.




그러다 모임이 끝날 무렵, 한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솔직한 건 자연스럽지 않다.'


세상에 100% 솔직한 인간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한 그랬다. 너무 솔직한 글은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그제야 '솔직한 글은 재미없다'는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좋은 글은 곧 자연스러운 글이다. 그리고 자연스러운 글은 100% 솔직한 글이 아니었다. 글은 말에서 나오고, 말은 인간에게서 나오는데, 인간은 결코 완벽히 솔직할 수 없는 존재였다. 그러니 좋은 글을 쓰겠다고 너무 솔직해질 필요는 없었다. 자기 생각을 충실히 덜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그간 글 쓰는 과정에서 솔직하지 못해 답답했던 순간들이 조금 누그러졌다. 진실성이 부족한 글을 쓸 때면 늘 찝찝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물론 의도적으로 허황된 이야기를 쓰진 않겠지만, 적어도 솔직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글이 막히는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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