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적응되지 않는 글쓰기의 막연함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
글을 쓰려 노트북 앞에 앉았을 때 막막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쉬워지는 게 아니라 점점 어려워졌다. 어떤 날은 10분 만에 2,000자를 쓰기도 하지만, 어떤 날은 3시간이 지나도 한 문단도 마무리하지 못한다. 막연함은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친구 같았다. 내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낯설지만 익숙하고, 불쾌하지만 떼어낼 수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지금 마주한 막연함은 뭔가 다르다. 마치 이세계(異世界)에서 불시착한 감정이랄까. 집에서 혼자 아이를 돌보는 아내를 생각하면, 적어도 일기 같은 에세이 한 편이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이 움직이지 않는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GPT에 도움을 청해봐도, 무미건조한 기계의 대답으로는 이 서먹함이 가실 기미가 없다.
언덕 너머 태양을 향해 달려갔지만, 정작 마주한 건 누군가 정교하게 그려놓은 캔버스를 마주한 것만 같다.
나는 왜 글을 쓰고 있는가.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은 사람으로서, 스스로를 글 쓰는 사람이라 여기며 살아온 나로서 이 질문을 수도 없이 되뇌었다. 글쓰기가 좋아서. 내가 보고 느끼는 것들을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서. 사람들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오늘의 행복을 거머쥐었으면 해서. 이런 이유들이 과연 ‘진짜’일까. 뭔가 부실하다. 철근 빠진 콘크리트 기둥이 떠오른다.
언제부턴가 소소한 기념일보다, 아내의 생일보다, 결혼기념일보다 그날의 글쓰기에 더 집착하기 시작했다. 균형이 무너진 느낌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라 믿으며 다른 것들은 애써 외면했다. “글을 왜 쓰는지 잘 생각해 봐.”라는 아내의 말이 가슴에 맺혔지만, 모른 척했다.
혹시 몇 개월 뒤, 정체 모를 곳으로 복직해야 한다는 두려움 때문일까. 지금처럼 편하게 글을 쓰지 못하고, 어쩌면 거의 쓰지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나를 멈춰 세우고 있는 걸까.
마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글쓰기에 대한 자부심, 작가로서의 삶.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만으로도 희열을 느끼지만, 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출판사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으면 좋겠다. 가벼운 에세이라도 사람들에게 잔잔한 영향을 주었으면 한다. 사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유명해지는 것은 원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 싶다. 그 어중간한 지점이 내가 바라는 곳이다.
매일 글을 쓰는 것 말고는 딱히 뭔가 하는 게 없다. 육아를 병행하다 보니 사실 그마저도 위태롭다. 어제는 거의 글을 쓰지 못했다. 다음 주에 발행할 글을 다듬기만 했을 뿐이다. 내 기준에 그것은 글쓰기가 아니었다.
막연하다. 그래도 이렇게 신세한탄하듯 주저리주저리 쓰고 나니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진다. 다만, 이 글을 마무리하는 게 두렵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메모장을 닫으면 또다시 심연의 늪으로 빠질 것만 같다. 그럼에도 언제까지 넋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마지못해 마무리해본다.
혼돈아 덤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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