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7-3
여행의 막바지를 알리는 노을빛이 하늘을 뒤덮을 무렵 숙소에 도착했다. 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기 시작하면 이후엔 씻기고 재우느라 여유가 없을 테니 늦기 전에 서둘러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따지고 보면 아직 2박 3일 일정의 절반이 남았지만, 둘째 날 저녁이 다가오자 여행이 거의 끝난 듯한 묘한 허전함이 밀려왔다.
일주일간의 제주도 여행을 마무리하는 저녁의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중국 고급술인 수정방도 있었지만, 첫날부터 거의 쉬지 않고 매일 밤 술을 곁들였던 데 대한 죄책감이 들어 김치찌개와 짜파게티로 끼니를 때웠다. 술을 마시면 뿌듯함보다는 여러 안 좋은 감정들이 몰려온다는 걸 알면서도 왜 밤마다 술을 찾는지를 곱씹으며 허기를 채웠다. 어느새 찜찜했던 기분은 희미해졌고 뒤늦게나마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음악을 들으며 글을 썼다. 마음을 어지럽히던 생각들은 글을 쓰다 보면 금세 날아갔다. 숙소 주인분이 늦은 시간에 돌아와 짐을 옮기는 게 창문 너머로 보였다. 인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모른 척했다. 조금이라도 더 아늑한 공간을 누리기로 했다.
이제 막 잠에 들려는 순간, 어떤 문장이 떠올랐다. 숙소에 도착했던 날 안내문에서 봤던 그 문구.
밤하늘에 무수한 별도 즐길 수 있습니다.
처음 그 문장을 읽었을 땐 '오랜만에 별 구경도 제대로 하고 가야지' 다짐했었다. 하지만 별구경은커녕 밤 10시쯤이면 피로에 짓눌려 그대로 곯아떨어졌고, 둘째 날도 비슷한 시각에 무기력하게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지금 아니면 영영 못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게으름을 털고 몸을 움직였다. 논산훈련소에 갓 입소한 훈련병처럼 벌떡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 문을 열고 나갔다. 마당을 감성 주점처럼 밝히던 전구색 조명들이 꺼져 있어 훨씬 고요하고 어두워진 가운데, 설레는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다.
'무수한 별...'
기대가 컸던 탓일까. 처음엔 생각보다 별이 많지 않다고 느꼈다. 하지만 이내 달빛을 머금은 수많은 별들이 눈에 맺혔다. 상상했던 풍경과 비슷했지만 다가오는 느낌이 남달랐다. 내심 '별이 많아봤자지'라는 생각을 품고 마주한 별들은 더할 나위 없이 경이로웠다.
현대인의 상식은 이런 낭만을 즐기기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별을 보며 감탄하다가도 ‘저건 진짜 별일까? 위성이나 비행기 아닐까’라는 생각이 스쳤다. 무의식적으로 뭔가를 분석하고 있는 나 자신을 자각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하늘을 가만히 바라보다 보면 잡생각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서귀포 밤하늘에 박힌 별들은 그 자체로 멍하니 바라보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저 근사한 광경을 혼자 보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곧장 아내에게 다가가 거의 흔들다시피 깨웠다.
"여보, 하늘에 별 진짜 많아."
"진짜?"
의외였다. 평소 한 번 눕고 나면 잘 일어나지 않는 아내는, 별 얘기를 듣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벌떡 일어났다. 그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 몰랐기에 순간 배신감이 밀려왔지만, 곧바로 함께 밖으로 나선 아내의 모습에 뿌듯함이 더 컸다.
우리는 마치 누가 더 많은 별을 담을지 겨루듯 하늘을 향해 스마트폰을 들이댔다. 아내는 구형 갤럭시, 나는 최신 아이폰을 쓰고 있었는데 어두운 하늘에서는 갤럭시도 꽤 선전했다. 아이폰은 눈으로 본 것보다 훨씬 밝게 별을 담아냈고, 초록빛 오로라 필터를 씌운 듯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글을 쓰고 사진을 찍기 시작한 이후로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부쩍 많아졌지만, 이렇게 밤하늘을 오래 바라본 적은 드물었다.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별들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모래알처럼 빛나는 별들은 별것 아닌 듯하면서도 동시에 압도적인 존재감을 품고 있었고, 나로 하여금 이상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아주 멀리 있는 별의 빛이 지금 내 눈에 닿는 거겠지. 대체 얼마나 크면 이 먼 곳까지 빛을 보낼 수 있을까.'
'저 별들은 얼마나 크길래.'
가늠할 수 없는 별들의 크기를 상상하다 보니, 마음을 짓누르던 여러 고민들이 문득 하찮게 느껴졌다. 찰나처럼 스쳐가는 인생.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이 남은 것 같지만 저 별들에 비하면 우리네 삶은 한순간일 뿐이었다.
그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나는 왜 이렇게 많은 걱정을 품고 살아가는 걸까. 정작 중요하지도 않은 고민들, 의미 없는 짐들을 스스로 짊어지며 무겁게 살아온 건 아닐까. 나는 얼마나 사소한 일들에 마음을 쏟으며 나 자신을 괴롭혀왔던 걸까.
한때는 나도 저 머나먼 별들과 같은 존재였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먼지 같은 존재로 태어나 별의별 걱정을 끌어안고 살아가고 있을까. 끝도 없이 이어지는 잡념들은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가.
그렇게, 나는 한동안 별들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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