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으로 가는 길

day 8-1

by 달보


으레 그렇듯 이번에도 다르지 않았다. 여행의 막바지에 이르자 조금 더 머물고 싶기는커녕 조금이라도 더 빨리 집에 가서 푹 쉬고 싶었다. 7박 8일의 일정이라서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여행의 절반쯤부터 이미 집이 그리웠다. 카페나 미술관 같은 공간이 아무리 넓고 화려해도, 숙소가 아무리 아늑하고 편해도, 날씨가 아무리 화창하고 따뜻해도, 익숙한 일상의 안락함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서귀포에서 제주 공항까지는 어림잡아 1시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아침부터 서둘러야 했다. 빠진 물건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고 못 찍은 사진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둘러본 뒤 숙소 문을 나섰다. 처음 도착했을 때는 모든 게 만족스러워서 '제주도에 다시 오면 무조건 이곳으로 와야지' 다짐했었다. 하지만 막상 짐을 들고 문을 나설 땐 비슷한 다른 숙소를 찾아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인간의 마음이란.


KakaoTalk_20250526_105520051.jpg
KakaoTalk_20250526_105444281_29.jpg
KakaoTalk_20250526_105444281_06.jpg


집에 빨리 가고 싶기도 했고, 렌터카 반납도 해야 했고, 무엇보다 공항에는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는 편이 마음이 놓이기 때문에 별다른 일정은 잡지 않았다. 숙소 근처에서 아침을 먹고 바로 공항으로 향할 생각이었다. 아침 식사는 아내가 제안한 서귀포 표선면에 있는 '당케올레국수'라는 칼국수집에서 하기로 했다. 가까울 줄 알았는데 막상 티맵을 찍어보니 20km나 떨어져 있었다. 약간 당황했지만 막간 해안도로 드라이브나 즐긴다는 마음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왠지 기분이 쎄했다. 멀리서부터 가게가 어둑어둑해서 문을 닫은 듯한 느낌이었다. 주차장을 찾으러 가게를 지나치던 찰나에 출입구에 걸려 있던 정기휴무 명판이 걸려 있었다. 아내가 휴무일을 확인하지 않은 게 원망스러웠지만 나 역시 확인하지 않은 탓이 있으니 씁쓸함을 삼켰다. 그래도 멀리 온 만큼 허탈함이 컸다. 정신을 가다듬고 네이버 지도에 '칼국수'를 검색했다. 다행히 바로 옆 골목에 '표선칼국수'라는 곳이 있어 근처 부둣가에 차를 대고 곧장 향했다.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02.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03.jpg


우연히 도착한 그곳은 '또간집'으로 유명한 풍자가 방문한 집이었다. 연예인이 다녀갔다고 해서 특별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지만, 뜻밖의 장소에서 익숙한 이름을 마주하니 괜히 잘 찾아온 느낌이 들었다.


보말칼국수를 주문하고 가게를 둘러봤다. '보말은 제주도 사투리로 고둥을 말한다'는 문구를 보고서야 보말이 뭔지 알게 됐다. 맛이 궁금했는데 먹어보니 '매우 맛있는 칼국수'보다는 '꽤 괜찮은 칼국수' 정도였다. 국물을 자주 남기는 편인데 이 보말칼국수는 국물까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싹 비웠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합이라도 맞춘 듯 그릇과 수저를 깔끔하게 정리했다. 그리고 든든한 속을 안고 공항으로 향했다.


KakaoTalk_20250526_141804469.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11.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07.jpg
KakaoTalk_20250526_141225185.jpg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았다. 문득 아내 친구가 제주도에 엄청 큰 스타벅스가 있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마침 가는 길에 있어 잠시 들르기로 했다. '스타벅스 더제주송당파크R점'이었다. 지난번 갔던 '제주당' 카페도 육지에서는 보기 힘들 만큼 컸는데 여긴 그보다 더 커 보였다. 제주도 대형 카페들은 기본 규격 자체가 다른 듯했다.

다만, 넓은 대지에 스타벅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스타벅스 옆에 다른 카페도 있었고 기념품샵과 마트까지 한데 어우러진 복합 공간이었다. 이상한 조합처럼 보이지만 묘하게 어울렸다. 압도적인 규모 덕에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스타벅스 건물 맞은편엔 연못과 정원이 있고, 미니 등산로처럼 이어진 길 끝엔 작은 폭포가 흘러내렸다. 한 바퀴 도는 데 30분은 족히 걸릴 넓은 정원은 거의 공원에 가까웠다.


외관은 화려했지만 스타벅스 내부는 의외로 평범했다. 1층은 구조가 조금 독특했지만 2층은 여느 스타벅스와 다를 바 없었다. 똑같이 생긴 테이블과 의자가 심심하게 배열돼 있었다. 신혼여행 때 다녀온 밀라노의 스타벅스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비교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내도 비슷하게 느꼈는지 서로 커피 주문할 생각은 않고 말없이 외부 조경만 둘러봤다. 결국 사진 몇 장을 찍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15.jpg
KakaoTalk_20250526_141804469_01.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19.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20.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14.jpg
KakaoTalk_20250526_105520051_13.jpg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뜻밖의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지브리 기념품샵이었다. 내가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지만 지브리에 특별한 애정은 없다고 생각해왔었다. 물론 지브리 음악은 좋아했지만 굳이 찾아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그 모든 생각이 착각처럼 느껴졌다. 나는 자석처럼 이끌리듯 샵 안으로 들어섰다.


지브리 기념품샵은 아담한 공간이었지만 스타벅스보다 훨씬 더 볼 게 많았다. 지브리 애니메이션을 많이 본 편은 아니었는데도 80% 이상은 눈에 익었다. 처음 보는 캐릭터조차 낯익게 느껴질 정도로 기시감이 들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화 속에 잠시 들어온 듯한 기분. 배경으로 흐르는 지브리 음악도 반가웠다. 기념품을 사고 싶었지만 며칠 지나면 흥미가 식을 것 같아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스타벅스만 들렀다면 아쉬웠을 수도 있지만 지브리샵 덕분에 굳이 발걸음한 게 아깝지 않았다. 우린 다시 공항으로 향했다.




CONNECT

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keyword
이전 18화밤하늘의 별들이 내게 가르쳐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