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는 다툼의 가벼움
아이를 재우려고 안는데 낯선 열기가 느껴졌다. 열을 재보니 39도였다. 그때부터 며칠 간 고열에 시달리더니 결국 감기가 제대로 찾아왔고, 나와 아내는 처음으로 아픈 아이를 돌보게 되었다.
잠도 잘 못 자고, 밥도 잘 못 먹고, 드문드문 목을 긁는 듯한 기침을 했다. 분명 코를 닦아주는데도 코 주변엔 콧물이 누렇게 눌러붙었고, 손수건으로 훔칠 때면 젖 먹던 힘으로 쥐어짜낸 듯한 짜증을 냈다. 그런 아이를 두고 도서관을 갈 수도, 방구석에 틀어박혀 글을 쓸 수도 없는 노릇이라 온종일 옆에 붙어 있었다. 비록 크게 해줄 수 있는 게 없을지라도 아픈 아이를 두고 다른 일이 손에 잡힐 리 만무했다. 그러니 그저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는 수밖에.
아파서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아이가 부리는 짜증이 더해질수록 신경이 점점 거슬리기 시작했다. 나 어릴 때도 아프면 어른들이 먹기 싫다는데도 그렇게 밥숟가락을 들이밀더니, 내가 그 짓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먹기 싫은 걸 알지만, 그래도 먹어줬으면 좋겠는데. 아이가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바람에 이유식과 가루 섞인 약물이 온 사방에 튀기도 했다. 그런 와중에 내 안에 잘 나타나지 않는 분노의 기운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었고, 그건 아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나는 모임이 있어 나갈 채비를 하고, 아내는 아이를 재우기 전 입 주변과 코를 씻기려 싱크대쪽에서 아이를 안고 있었다. 평소에도 어둡거나 말거나 전등을 키지 않고 요리하는 버릇이 있는 아내였기에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주방 불을 켰다. 하지만 내가 건든 스위치는 주방을 밝히는 전구뿐만은 아니었는지, 득달같이 아내의 분노 섞인 목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아이가 잠들 때쯤에 환한 불빛을 비추지 않기로 해놓고 불을 켰다는 게 이유였다.
아내가 토한 감정에 휩싸인 나는 아무 말도 하기 싫어졌다. 자초지종이 어찌됐든 간에,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나는 나빠지는 기분을 그대로 방치하기로 했다. 추락하는 기분을 붙잡아 올리기엔 아이에게 시달리느라 이미 심신이 지칠대로 지쳤기 때문이다. 나는 낌새를 눈치챈 아내가 나의 반응을 기다리는 것을 무시했고, 그대로 짐을 챙겨서 가출하듯 집을 나섰다.
황금색이 옅어지는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며 운전하는 동안 모임 사람들 앞에서 환히 웃을 수 있을까, 모임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다시 부딪힐까, 만약 화해해도 날아가는 게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쌓이면 어쩌지, 라는 생각들에 모임 장소가 좀 더 멀었으면 하는 소망을 곁들였다.
도착지에 거의 다다를 때쯤, 지난 여행 도중 서귀포 밤하늘을 수놓은 무수한 별들이 뇌리를 스쳤다. 그 경이로운 장면을 가만히 올려다보며 어떤 심정이 들었는지 난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저 별들은 얼마나 크길래 빛이 이 먼곳에 있는 내 눈에까지 닿는 걸까.'
'저 별들은 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그리고,
'내가 가슴에 묻고 사는 수많은 고민들은 얼마나 하찮은 것인가.'
별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렇게 마음이 다쳤는데 별 것이 아닌 게 아니라는 심정에 동조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부질없고 어리석은 망상에 휩쓸리고 있는지 새삼 깨닫고서, 바로 아내에게 카톡을 보냈다. 미안하다고, 다음부터 안 그러겠다고.
아이를 재우고 있을 아내가 있는 방 천장에 매달린 캠 화면을 앱으로 켜서 반응을 살폈다. 얼핏 보기엔 미동이 없는 듯했다. 휴대폰을 손에 쥐고는 있는데 손가락이 움직이는 것 같진 않았다. 내 카톡을 보고도 답을 하지 않는 건지, SNS를 하고 있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설마 읽고도 무시하는 건 아니겠지, 라는 섬뜩한 추론이 피어오르던 찰나에 아내로부터 답장이 도착했다.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들을 여행 도중 보지 못했다면, 불현듯 떠오른 그 추억을 빌미로 아내에게 먼저 사과해야겠다는 용기를 내지 못했다면, 얼굴 보고 싸웠으면 얼굴 보고 풀어야 한다는 관념을 고수했다면, 얼토당토 않게 발발된 냉전이 얼마나 이어졌을지 모를 일이다. 이미 죽어 사라지고 있는 별들이 나를 한 번 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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