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집에는 이제 할머니 혼자 계신다. 어릴 적 친척들과 복작복작 모여 밥을 먹던 시절엔 그 집이 참 크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혼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많던 식구들이 어떻게 그 공간에서 매 끼니를 해결했는지 신기할 정도다.
혼자 지내는 할머니가 크게 걱정되진 않는다. 왜냐하면 할머니 집에는 사람이든 물건이든 늘 무언가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가끔 들리면 이미 와서 놀고 계신 분도 있고, 할머니랑 둘이 있다 보면 이따금씩 꼭 누군가가 들리곤 했다. 지나가는 길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고 이것저것 놓고 가는 분도 많았다. 대부분 간식이나 과일, 쌀 같은 생필품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할머니, 참 잘 살아오셨구나.'
할머니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치면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다. 남은 음식을 한데 모으고 그릇을 차곡차곡 쌓아둔다. 직원이 상을 단번에 치울 수 있게 말끔히 정리한다. 예전엔 굳이 저런 걸 왜 하나 싶었는데, 이제는 나와 아내가 먼저 그릇을 치운다. 어느새 할머니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렇게 하게 됐다.
또한 가스 점검이나 A/S 기사님이 집에 오시면 그냥 돌려보내는 일이 없다. 할머니가 그러셨듯, 요쿠르트나 비타민 음료 같은 걸 꼭 챙겨드린다. 그러면 처음엔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기사님들도 어느새 환한 미소를 짓는다.
할머니를 보다 보면 '주는 만큼 받는다'는 말이 그냥 생긴 말이 아님을 알게 된다. 인생의 후반부를 살고 있는 할머니가 외롭지도, 배고프지도, 아프지도 않게 하루하루 잘 지내는 걸 보면, 아낌없이 퍼주며 살아온 대가를 고스란히 받는 것만 같다.
나는 장사하시느라 바쁜 부모님 대신 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나를 손수 키워준 그분이 내게 얼마나 많은 걸 가르쳐주고, 여전히 배울 게 얼마나 많은지는 곁에서 멀어질수록 더 또렷해진다. 아직은 정정하시니 상실을 걱정하긴 이르지만, 할머니가 없는 세상은 얼마나 공허할지 감조차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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