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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이 들추는 헛된 희망

by 달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주로 차가 주차되어 있는 지하 1층 버튼을 누른다. 고작 한 개층 차이이지만 지하 2층 버튼을 누르는 사람들은 마치 다른 영역에 사는 존재들만 같다. 지하 1층이 아니면 차를 대기 싫은 이상한 고집은 언제부터 부리게 된 걸까.


그러다 언제부턴가는 1층 버튼을 지하 1층만큼 자주 누르게 됐다. 분리수거나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면 1층으로 간다. 지하 1층으로 나가도 분리수거장이 있어서 한때는 지하 1층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는 만능통로처럼 여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굳이 1층으로 나가서 볼일을 보는 건,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생활 동선을 조금이라도 구분해보려는 의도였다. 최근 들어서는 1층으로 갈 일이 더 많아졌는데, 유모차만 타면 곯아떨어지는 아이 때문이다.


그렇게 1층으로 나가는 일이 많아지다 보니 우편함에 있는 각종 고지서를 일일이 챙기게 되었다. 어차피 휴대폰으로 모든 세금 정보가 날아오고, 결제도 카드와 등록된 자동이체를 통해서 이뤄졌기에 고지서를 일일이 집으로 가져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었다. 그럼에도 우리 집 호수가 적힌 우편함에 뭔가가 꽂혀 있는 게 내심 달갑지만은 않았던 건, 우편함에 뭔가가 많이 꽂혀 있으면 그 집은 꼭 어떤 좋지 못한 기운이 감돌고 있을 것만 같은 고정관념이 내 안에 허락도 없이 서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우편물이 꽂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 때면 어김없이 아파트 관리비 청구서가 들어 있었다. 반면에 그런 예감도 없는데 뭔가가 꽂혀 있으면 '혹시 단속카메라에 찍힌 건가'하는 마음부터 들었고, 그렇게 집어든 봉투는 대부분 카드사에서 보낸 광고지였다. 어느덧 1층을 지날 때마다 우편함을 훑어보는 건 습관이 되었는데, 언제부턴가 우리집 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의 우편함도 흘깃거리게 되었다.


그중에서 유독 정체 모를 봉투가 겹겹이 쌓여 있는 우편함을 보면 괜스레 오지랖을 부리고 싶어진다. 저 집은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건지, 혹시 예전의 나처럼 1층을 지날 일이 거의 없어서 꺼낼 일이 없는 건지. 되도록이면 후자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본다.


다른 집이 어떻게 사는지는 사실 별로 궁금하지 않다. 가까운 가족의 안부조차 자주 챙기지 않는 내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봉투가 쌓인 우편함을 볼 때마다 괜히 신경이 쓰이는 걸 보면 내 마음속 어딘가에 내가 다 알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는 건지, 그런 장면이 내 안의 어떤 기억을 건드리는 건지 생각해보게 된다. 우편함에 꽂히는 건 늘 빚 독촉장이었고, 단골 손님보다도 돈 받으러 식당 안으로 당당히 걸어 들어오는 일수 아저씨의 얼굴을 더 자주 봤던 어린 시절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비현실적인 희망은 품어본 적이 없다. 누가 잘 살면 누군가는 필시 못 살 수밖에 없는 메스꺼운 사회 구조를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은 진작에 받아들인 지 오래였다. 모순적이지만 그럼에도 나는, 우리집 아파트 1층 우편함이 말끔했으면 좋겠다. 그럼 최소한 다들 무탈하게 잘 지내는 것처럼 보이기라도 할 테니까.


나는 그저 달갑지 않은 과거를 아예 소멸시켜버리고 싶은 마음에, 되도 않는 희망을 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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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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