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 하면 보통 공부를 잘하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반장이나 리더 역할을 도맡는 학생을 떠올리게 된다.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그런 학생은 늘 있었다. 동급생이지만 왠지 동류(同流) 같지가 않았던, 어딘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런 존재들 말이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모범생의 기준은 누가 정한 걸까.
국어사전에 따르면 모범은 '본받아 배울 만한 행동이나 사례'를 의미한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고 따라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말이다. 하지만 그 기준이 언제, 어떤 이유로,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를 따져보면 다소 막연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범생'도 결국 그 정의에 맞춰진 이미지일 뿐이다. 과연 그 기준은 지금 이 시대에도 유효한가.
학생에게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모습은 대개 다툼 없이 지내고, 부모님과 선생님의 말을 잘 따르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겉으론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아이들. 하지만 그런 모습 뒤에 예상치 못한 면이 숨어 있기도 하다. 겉으로는 반듯하고 착해 보이지만 뒤에서는 친구들을 따돌리거나 괴롭히는 아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멀쩡해 보이지만 혼자일 때는 외로움과 우울에 시달리는 아이.
나의 중학교 시절에도 그런 이가 한 명 있었다. 전교 1등에 키도 크고 잘생긴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매일 함께 등교하는 친구 중 한 명을 심심하면 때리곤 했다. 본인은 장난이라며 웃어 넘기지만, 맞는 친구의 표정은 입장이 많이 다른 듯했다.
우리는 '모범적'이라는 단어에 긍정적인 감정을 담는다. 하지만 그 '모범'이란 것이 사실 누군가가 임의로 만들어낸 틀이라면, 그 기준을 억지로 따르려는 사람들은 점점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지 않을까.
공부를 열심히 하는 이유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모범생처럼 보이기 위해서'라면 그 노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마음속에서 우러난 열정이 아닌,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강요된 열심은 언젠가 균열을 일으킨다. 그게 바로 '모범'이라는 이미지가 가진 한계가 아닐까 싶다.
만약 세상 사람 모두가 완벽한 모습을 보인다면 '모범생'이라는 말은 필요 없을 것이다. 모범생이라는 개념은 비교할 만한 대상이 있을 때에야 비로소 성립한다. 그리고 그 비교는 누군가를 소외시키기기 마련이다. 겉으로만 완벽한 척하는 삶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부모의 기대를 채우기 위해, 사회적으로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혹은 명문대라는 목표에 매달리느라 공부에 몰두한다면 그것은 결국 외적인 기준에 따라 사는 것이다. 그 끝에는 번아웃과 공허함, 스스로에 대한 회의가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
모범생이라는 개념은 사회가 만들어낸 하나의 이상일 뿐이다. 하지만 사람의 본성은 훨씬 더 다채롭고 예측하기 어렵다. 겉으로는 얼핏 비슷해 보여도, 성격이나 경험, 가치관을 들여다보면 똑같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A가 B보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A와 B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B가 A보다 운동을 더 잘한다면 그것 또한 각자가 가진 다른 장점과 특성 덕분이다. 그런 차이를 감안하지 않고 '모범'이라는 조작된 기준만을 좇는다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거듭날 수도 없을 뿐더러 언젠간 걷잡을 수 없는 공허함에 발목이 붙잡힐지도 모른다.
현대 사회는 사람들에게 특정한 길을 강하게 권하며 '이렇게 사는 게 옳다'고 세뇌시킨다. 그 속에서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맞는 길이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남이 만들어놓은 기준을 향해 그저 맹목적으로 달릴 뿐이다. 이 세상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설령 그런 것이 존재한다 해도 찰나의 순간에만 통할 뿐, 끝없이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형태는 끊임없이 달라질 것이다.
세간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것도 '내 일'을 찾는 과정의 일부로 볼 수 있다면 괜찮지만, 그 과정 자체가 목표가 되어버리는 순간 방향을 잃고 막막하게 헤맬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고, 스스로 생각할 자유가 있다. 더 나아가 주어진 '틀'을 벗어날 권리 또한 가지고 있다.
비록 모범적이라 볼 수 없는 평범한, 혹은 그보다 못한 삶을 살아왔다 해도 괜찮다. 살아가는 데 있어 '정해진 올바른 형태'란 애초부터 없었으니까. 이 세상에 엄연한 나로 태어났으니, 그저 나답게 살아가는 게 어쩌면 우리가 생각하는 진짜 모범적인 삶일지도 모른다. 비록 나다운 게 무엇인지 찾기 위해 한동안 헤매겠지만, 그런 시간조차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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