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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밥과 친해지기로 했다

혼밥이 비추는 존재의 은유

by 달보


첫 직장을 서울 역삼동에 있는 회사로 취직했다. 대구 촌놈이었던 난 신림동 원룸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여러 가지 적응해야 할 게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혼밥'이었다. 그땐 요즘처럼 혼밥이 대세가 아닌 시절이라 혼자 식당에 들어가는 일은 어색하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자취방 골목을 나서면 바로 보이는 순댓국집 앞을 서성인 건 그 때문이었다. 딱히 갈 곳도 없으면서 괜히 지나쳐 보기도 하고, 밖에서 안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힐끔거리기도 했다.


혼자 밥 먹는 나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발목을 붙잡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조차 배고픔을 당해낼 재간은 없어서 용기를 한 움큼 삼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때 내눈에 들어온 것은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이들의 등짝이었다. 손님 절반 이상이 혼자였다. 유독 그날따라 그랬던 건지, 서울은 이미 혼밥 문화가 자리를 잡은 건지는 몰라도, 확실한 건 그 찰나의 순간에 내 마음 한켠을 옥죄고 있던 혼밥에 대한 두려움이 한방에 녹아내린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혼밥과 친해지기로 했다.


요즘은 혼밥이 유행처럼 번졌다. 식당마다 1인석이 없는 곳이 드물고, 혼자 밥 먹는 걸 보고 안쓰럽게 보는 시선은 거의 사라졌다. 현대인들의 삶에 혼밥이 자리잡은 것에 대한 것보다는, 혼밥에 대한 장점이 더욱 부각되는 듯하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혼밥'이라는 단어가 느닷없이 튀어나온 신조어가 아니라, '밥을 같이 먹는다'의 현상에 가려진 본질이 드러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해보니 두 사람이 밥을 먹든 여럿이서 밥을 먹든 '함께하는 식사'라는 건 애초에 성립될 수가 없었다. '너와 내가 한 자리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도 실은 각자가 각자의 배를 채우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주 보고 웃거나 대화를 나눌 순 있어도, 함께 먹는다고 해서 허기가 곱절로 채워지는 게 아니듯 함께 있어도 결국은 서로가 혼자다. 인간은 여지껏 줄곧 혼밥을 해왔고 앞으로도 그 사실은 변함없을 것이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 당연히 함께하는 건 줄 알았건만 그게 아니라니, 좀처럼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곱씹어볼수록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진실이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늘 함께하고 있다고 믿었던 모든 순간이, 평행선상을 이루는 서로 다른 세계관에 머무는 데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하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애초에 인간이란 본래 혼자일 수밖에 없는 존재라면, 밥을 먹을 때든 글을 쓰느라 대부분의 인간관계를 잃어버린 요즘 같은 때든, 혼자라는 이유로 더 이상 주눅들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는 거니까.


이상해서가 아니다. 외로워서가 아니다. 쓸쓸해서가 아니다. 단지 낯설기만 한 '낯섦'을 달리 볼 여력이 없다 보니, 익숙한 무언가를 대체하려는 본능이 일구어 낸 내면의 연극일 뿐이다.


혼밥이 21세기에 두드러진 시대적 현상이 아니라 태초부터 존재해왔던 일상의 민낯이 드러난 것뿐이라고 여기니, 글쓴이로서 감내해야 하는 고독이 조금은 덜 쓰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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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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