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와 이모부의 실패

by 달보


“내 나이 60이 넘었지만,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속으로 참 든든했다. 인생의 전반부를 제대로 살아내지 못했던 아버지였기에, 그런 다짐을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내겐 기적처럼 느껴졌던 순간이었다. 사회적 기준으로는 분명 실패한 삶이었다. 어머니를 잘 챙기지도, 나와 동생을 잘 케어하지도 못했다. 가난은 마치 늘 젖은 담요처럼 온 집안을 눅눅하게 감싸고 있었고 아버지의 말투나 표정마저도 그 눅눅함에 젖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지 않았다고 말하는 아버지를 나는 속으로 응원했다. 제발 이번만큼은 그 말이 공허한 외침이 아니길, 그리고 평생 고생만 해온 어머니가 늦게나마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길 바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 말은 결연한 의지라기보다는 현실 도피에 가까웠다. 아버지의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의 속뜻은 과거의 실수를 반성하고 삶을 바로잡으려는 태도가 아닌, 여태껏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면서 전과 다르게 살겠다는 자기기만에 가까웠다. 지난날들의 실패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채로,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 계속해서 같은 일을 했고, 계속해서 돈을 모으지 못했고, 심지어 유일한 자랑거리인 건강마저 위태로워졌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딱히 대책을 강구하지 않고 살아갔다. 아무런 노후 대비 없이, 이렇게 살다 보면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막연한 믿음만으로.




우리 이모부, 그러니까 어머니 언니의 남편인 이모부는 아버지와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다. 한때 나는 그의 밑에서 용접 기술을 배우겠다고 따라다녔다. 이모부는 내게 아내에게 손찌검 하는 아내, 고약한 술버릇, 가족을 내팽개치고 오랜 기간 집을 떠나 자식들에게 옳게 대접 받지 못하는 무책임한 어른으로 인식되고 있었다. 하지만 현장에서 몇 달 동안 붙어 지내다보니 알게 된 건데, 이모부는 생각보다 여리고 외로운 사람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 받고 상처받은 기억이 대부분이라, 본인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이들을 '적(敵)'으로 간주하며 자신을 보호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가기 전에 들린 식당에서 술잔을 부딪히며 이모부가 말했다.

“난 아직 내가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 순간 아버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알고 보면 현실 회피에 가까운 말일 거라며 확신했다. 이모부의 발언은 새로운 시작이 아닌 변화 없는 반복을 암시하는 경고음처럼 느껴졌다. 만약 내가 아버지에게 실망했던 기억이 없었으면 이모부를 순수한 마음으로 응원했을지도 모른다.


이모부 옆에 있으면 실력은 늘었을 것이다. 그는 기술도 있고 일머리도 좋았으니까. 문제는 하는 일이 지나치게 위험다는 것이었다. 지면으로부터 10m 가량 높은 곳에서 안전 고리 없이 작업을 해야 했으니 목숨을 내놓고 일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다. 나중에 더 이상 일을 못하겟다며 말했을 때 허탈한 표정을 지어 보이긴 했으나 크게 말리지는 않았던 건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얼마 뒤 들려온 소식은 예상대로였다. 건강 문제로 더는 일을 할 수 없게 됐고 소득은 끊긴 상태였다.




'늦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건 때로는 좋은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한 채 무조건 자신을 믿는 건 독이다. 그 말이 힘을 가지려면 먼저 자신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하는 게 전제다.


60대에 젊은 사람도 버티기 힘든 육체노동을 계속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빚쟁이로부터 숨기 위해 말소한 주민등록조차 복구하지 않은 채 무작정 돈을 벌겠다는 게 우선순위가 맞는 걸까. 가족들에게 빌린 돈은 갚지 않으면서 벌어들이는 돈을 매번 자기 욕심을 채우는 데만 쓰는 건 과연 도리에 맞는 일일까.


아버지와 이모부는 모두 과거의 삶을 바로잡겠다는 말 아래서 과거를 그대로 반복했다. 진짜 무서운 건 실패 그 자체가 아니라, 실패를 실패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늦지 않았음을 판가름 짓는 건 냉정한 성찰에서 비롯돼야 한다. 과거를 돌이켜보고,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바꿔야 할 건 바꿔야 비로소 그 말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다리가 된다.


나 역시 지금 이 글을 쓰기까지 수많은 회의와 게으름, 회피와 자기합리화를 반복해왔다. 그 시간들이 결코 생산적이진 않았지만, 그 안에서 내가 했던 선택들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조금씩 방향을 바로잡아 왔다. 만약 그 지난 시간들조차 돌아보지 않은 채 '나는 아직 늦지 않았다'며 책도 읽지 않고 그저 게임에만 몰두하며 살았다면, 지금처럼 생각을 글로 정리하고 표현하는 일은 아예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현재는 과거의 선택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결과다. 인생엔 정답이 없지만, 스스로 늦었다고 느낀다면 정말 늦은 것이기도 하다. 다만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가짐과 행동을 조금씩 바꿔간다면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동아줄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항상 우리 주변을 서성인다.


현재를 수습하겠다며 과거를 답습하는 건 자기기만에 가깝다. 반성이 결여된 '아직 늦지 않았다'는 확신은 공허한 위로일 뿐이다.




CONNECT

달보가 쓴 책 : 『신혼이지만 각방을 씁니다』

달보의 일상이 담긴 : 인스타그램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혼밥과 친해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