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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여름

by 달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카페에서 글을 쓸 때면, 종종 노동요로 캐롤을 듣곤 한다. 요즘 꽂힌 존박의 캐롤 메들리를 듣다 보면 나 혼자 겨울에 앞서 진입한 것만 같다. 그만큼 나는 겨울을 기다린다. 그만큼 나는 겨울을 좋아한다. 겨울인 와중에도 겨울을 기다릴 정도로.


내 생애 한 획을 그을 만한 일들은 모두 겨울에 일어났다. 1월 1일 첫눈 내리던 어느 겨울날 첫사랑과 연인이 되었고, 그 사랑은 그 다음 해 겨울쯤 끝이 났다. 이별의 아픔이 채 가시기도 전인 바로 그 겨울에 또 다른 인연과 특별한 관계로 이어지더니, 이내 또다시 찾아온 겨울에 그 사람과도 멀어졌다. 이후에도 나와 연인이 될 만한 인연은 모두 겨울에 다가왔고, 겨울에 떠나갔다.


내가 겨울을 좋아하는 건 겨울이라는 계절의 풍경이 아름답거나, 추운 날씨를 잘 견뎌서가 아니라, 겨울이 다가오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은 설렘이 나를 고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목도리와 장갑이 없으면 나갈 엄두가 나지 않고, 내쉬는 숨결마다 입김이 더불어 나오는 날은 왠지 모르게 서글프면서도 형언할 수 없는 생기가 차오르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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