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대가

by 달보


직장 내 행사로 꽃꽂이 체험을 하게 되었다. 말로만 듣던 꽃꽂이. 재밌을 것 같았고, 왠지 잘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퇴근길 아내에게 갖다주며 점수 따는 건 덤일테지. 꽃 한 송이 사다준 게 언제였더라.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해보겠나 싶은 마음에 내심 그날을 기다렸다.


제시간에 맞춰 해당 장소에 도착하니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대부분 여성분들이었다. 괜히 뻘쭘한 마음에 쭈뼛거리다가 맨 앞쪽 자리가 비었길래 인파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테이블 위엔 커다란 꽃바구니와 다양한 꽃들이 뭉툭하게 쌓여 있었다. 가위와 의사들이 낄 법한 나일론 장갑도 옆에 놓여 있었다. 수술을 집도하는 듯한 마음으로 장갑을 끼고 있으니 앞쪽에 낯선 세 분이 눈에 들어왔다. 전문 강사님과 보조 강사님인 듯했다. 분주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들뜬 표정이 보였다.


수업이 시작되니 강사님이 꽃들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하고 바로 꽃을 꽂기 시작했다. 먼저 꽃이 없고 나뭇잎만 달린 가지 아랫부분을 싹둑 잘랐다. 그리고 강사님을 따라 위쪽으로 두 개 꽂고, 양쪽에도 하나씩 꽂았다. 마치 더듬이 두 개가 위로 길게 뻗은 무언가가 기지개를 펴고 있는 듯했다. 그다음엔 장미였다. 메인이라 할 수 있는 장미를 먼저 꽂고 나머지는 그 주변을 채우는 식이었다.


그때부터 난 강사님을 쳐다보지 않았는데 세 가지 이유에서였다. 우선 강사님을 따라 하느라 일일이 고개 돌리는 게 귀찮았다. 두 번재는 꽃꽂이에 정해진 형식 같은 건 없을 테니 내키는 대로 꽂으면 될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는 "이제부터 자유롭게 꽂으면 됩니다."라는 강사님의 발언 때문이었다. 서툴지만 혼자 고심해가며 왠지 낯익은 꽃들을 여기저기 꽂다 보니 금세 몰입이 되었다. 독서나 글쓰기보다 집중이 더 잘되는 것 같았다. 꽃 사이사이 여백을 채우는 맛이 쏠쏠했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스치는 꽃향기가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래서 꽃꽂이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보조 강사님이 와서는 나의 꽃바구니를 들쑤시기 시작했다. 정해진 모양대로 꽂는 게 규칙이라도 되는 양 꽂힌 꽃들을 뽑아서 재배치를 했다. 이제 막 꽂으려고 손에 쥐고 있었던 꽃도 홱 낚아채서는, "이건 조금씩 잘라서 여기저기에 분산시켜야 돼요."라는 말과 함께 가위로 잘게잘게 잘라버렸다. 너무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라 막을 새도 없었다. 말문이 막혀 벙찐 표정으로 가만 있으니 보조 강사님은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지나갔다. 잠시 바람이 불어 조금 흐트러진 것뿐이라며 스스로를 다독였다.


한편 다른 사람을은 꽃을 꽂는 와중에도 강사님들에게 질문하느라 바쁜 듯했다. 저마다 다른 목소리로 같은 걸 물었다. "선생님, 이 꽃은 어디에 꽂아야 돼요?" "선생님, 이렇게 꽂는 게 맞나요?" 자꾸 듣다 보니 우리 나라 교육의 실태를 엿보는 것 같았다. 정답이 없는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답을 좇는 심리. 옮고 그름이 없는 분야에서 그나마 나은 쪽에 속하려는 마음. 뭐 그런 것들이 떠올랐다. 그들은 모두 교육자였다.


그러던 중 지나가던 전문 강사님이 내 옆에 멈춰 서서는 보조 강사님의 행적을 고스란히 즈려밟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이번만큼은 넋놓고 당하고 싶지 않았다.


"이게 가장 중요한 꽃인데 왜 뒤쪽에 꽂혀 있어요?"

"아, 저는 앞뒤 구분 없이 하려고요."

"에이 그래도 앞뒤는 있어야죠."


"이 꽃은 이렇게 꽂는 게 아니라 잘라서 군데군데 꽂아야 돼요."

"저는 그렇게 안하고 싶은데요..."

"원래 그게 예뻐요."


나는 오해하고 있었다. 의사를 분명히 내비치면 "아, 그럴 수도 있죠."라며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날의 꽃꽂이는 자유롭게 꽂는 게 아니라, 정해진 형식대로 꽂는 것이었다. 이제부터 알아서 꽂으면 된다는 건 그냥 하는 소리였던 것이다. 내가 정성껏 꽂은 꽃이 뽑혀 잘리고 다른 꽃바구니와 비슷한 자리에 꽂힐 때마다 마음에 구멍이 송송 뚫리는 것 같았다.


강사님들의 서포트를 받으며 수줍게, 하지만 열심히 꽃을 꽂고 있는 동료들이 평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나만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미세한 충격의 진동은 내면에 적잖은 파장을 일으켰다. 그리고 새삼 다시 느꼈다. '나는 자유를 억압당하는 걸 조금도 용납하지 못하는구나.'


완성한 꽃바구니를 보니 분명 어딘가 엉성했다. 앞뒤 구분없이 꽃을 꽂았다고 생각했는데 살펴보니 균형이 맞지도 않았다.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위에서도 보고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최고의 모양은 아닐지언정 나만의 생각과 손길이 스며든 최선의 모양이었으니까.


나는 남이 정한 프레임에 갇히는 게 싫었다. 뻔한 것도 싫었다. 가능하면 거부하고 싶었다. 설령 대가를 치러야 할지라도 내 의지를 마음껏 표출하고 싶었다. 남한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는 계속 그렇게 살고 싶다. 한때는 세상이 닦아놓은 길이 최적의 루트라 여기며 남들의 발자취를 좇느라 여념 없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세상에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고, 정답 같은 건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으며, 각자 주어진 상황과 모양에 맞게 살아가면 그만인 것을 깨달은 후로는 생각이 많이 변했다. 근 20년 간 별다른 저항 없이 고분고분 살아온 세월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기존의 통념을 깨뜨리고 싶었다.


제멋대로 살기 시작하면서 잃은 것도 많았다. 부모님에게 소홀해지고, 친한 친구들과 멀어졌다.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고집이 세졌다. 하지만 그 덕에 지금의 평온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을 채워줄 무언가가 필요했던 과거에 비해, 이제는 스스로가 그 대체제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고되고 외롭지만, 내가 '나'일 수 있는 데는 이만한 삶의 형태는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로 태어난 김에 이왕이면 나답게,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고 싶었다.


방해받기 싫다.

간섭받기 싫다.


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 모양대로 살아야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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