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캐드 스토리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을 인정하기가 싫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가만히 쳐다보는 것밖에 없었다. 그에 비해 마음은 그놈들을 따라잡고 싶었다.
아무생각없이 살던 나 같은 놈도 대한민국에서 19살이라는 나이를 먹으니 위기감을 느꼈다. 막연하지만 뭔가 해야만 할 것 같은 그 더러운 기분. 하필 내 전공과는 캐드였고 학기 초부터 선생님의 대학잔소리를 들으니 이제 좀 해보자 라는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시간은 충분했다. 실습하는 날은 7시간 동안 한 과목만 하는 날이었다. 마음먹으면 금방 실력이 오를 것 같았다. 그렇게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몇 분 지나지 않아 절망감을 느꼈다. 일단 선생님부터가 잘못됐다. 학문적 지식은 출중하셨으나, 프로그램을 다룰 줄 몰랐다. 그런 사람이 학교에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가르치고 있었다. 학교가 잘못된 건지, 선생님이 잘못된 건지, 내 생각이 잘못된 건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믿을 건 나밖에 없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난 나를 믿을 수가 없었다. 선 하나도 그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처럼 그냥 내팽개쳐놓고 잠만 잤더라면 그냥 평화롭게 지나갔을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나마 한걸음씩 걸으려 했던 나에겐 상당히 불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더 불편했던 건 학원에서 미리 배워온 친구들이었다. 물론 평소에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기도 했지만, 프로그램을 학원에서 배워온 애들은 차이가 나도 너무 심하게 났다. 매번 내주는 과제를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끝내고 게임을 하고 있는 그들과 7시간 동안 머리를 붙잡고 싸매도 어떻게 해보지도 못하고 집에 갈 시간에 부딪히는 나의 상황은 너무나도 비교가 됐다.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달라고 하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가르쳐달라고 말을 걸더라도 한두번 말 걸어서 될 것이 아닌 것을 알기에 혼자 삭힐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신기한 점이 있다. 공부와 담쌓고 살던 내가 그 정도의 절망감을 느꼈다면 그냥 포기했을 법도 한데 난 포기하지 않았었다. 최후의 보루인 아버지에게 찾아가 학원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학생이 부모님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에겐 인생을 건 도전과도 맞먹었다. 한창 공부머리가 불타오르던 시절 그 불씨를 보기 좋게 꺼버린 건 나의 아버지였기 때문이다. 중학교를 올라가며 수학만 해결되면 전교석차 10% 안에 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수학을 배우고 싶다며 학원을 보내달라 했었지만 상상도 하지 못한 대답을 듣고야 말았다. '학원 갈 것 같으면 학교는 왜 다니냐'는 아버지의 말이 내 가슴을 관통했다. 난 사춘기 없이 지나갔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그 당시 아버지의 냉담한 반응 덕분에 공부를 포기하는 것으로 그 누구보다도 은밀하면서도 긴 시간 동안 반항을 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알고 있다. 그 당시 형편이 안 좋아서 학원을 미처 보낼 수 없었던 아버지의 마음을. 하지만 그 나이 때에는 남들 다 가기 싫어하는 학원, 난 내가 자발적으로 보내달라는데도 보내주지 않는 아버지를 이해할만한큼 성숙하지 못했다.
그런 나여서 학원을 보내달라는 말은 나에게 정말 꺼내기 힘든 말이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픈 기억을 삼키면서까지 아버지에게 학원을 보내달라고 한번 더 얘기를 꺼낸 것이다. 나에겐 정말 긴장되는 순간이었고 이번에 보내주지 않으면 따지고 들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20살 성인이 되기 직전에 하는 부탁이 진정성이 있었는지 이번에는 흔쾌히 허락을 해주고 적은 금액이 아니었지만 학원비를 흔쾌히 내주셨다.
이런 역사를 품은 채 배우기 시작하니 진지함이 남달랐다. 막상 학원을 등록해서 수업을 들어보니 고등학생은 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개발능력차원에서 보내주는 직장인들 또는 대학생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런 건 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난 단지 수업 내용을 이해하고 나만의 스킬로 흡수하는데에만 집중했다. 강사가 과제 10개를 내주면 20개를 해오고 그것도 모자라 예제를 더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수업을 듣다 보니 웬만한 직장인, 대학생들보다 나의 프로그램 실력이 가장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그 비싼돈을 줘가며(물론 회사에서 공짜로 내준사람도 있지만) 수강등록을 해놓고 왜그렇게 열의가 없는지 의아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배우는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아마 내가 처음으로 나의 완벽주의 기질을 느낄 수 있었던 순간은 그때가 아니었나 싶다. 수업내용을 100% 이해못할 수도 있는게 지극히 정상이지만 그날 집중이 안되거나 강사가 가르쳐주는 내용을 조금이라도 이해가 안되면 온 신경이 곤두섰다. 너무 예민해서 누가 건들기만 해도 폭발할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수업시간이 끝난 후 강사님을 내 앞에 붙잡아놓고 내가 이해가 될때까지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누가봐도 얌전해보였던 나는 내 이미지를 지켜나갔다. 유독 수업이 이해가 되지 않던 날, 집으로 가는 길에 분노가 점점 차올랐지만 나의 그런 상황을 모르는 아버지는 저녁밥상 앞에서 어른에게 저녁안부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갑자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순간 화를 참지 못하고 밥숟가락을 집어던지고 집밖으로 나갔다가 들어왔다. 그때가 아마 내가 처음으로 외부적인 반항을 했던 날일 것이다. 처음 보는 아들의 모습에 당황하셨던 아버지는 잠시 후에 나를 개패듯이 팼었고, 나는 당신이 내준 학원비만큼의 돈값을 못한다는 괴로움에 사로잡혀서 그런거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는 나의 아버지가 밉기만 했다. 그래도 그날 그렇게 한바탕 치르고 나니 나의 예민함은 한껏 풀이 죽어 더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난 결국 그 학원에서 수강생의 신분으로 다른 시간대의 학생들을 가르치는 알바도 했었다. 오전엔 셔츠를 입고 강의를 하고 오후엔 셔츠를 벗고 수강을 듣는 형식으로 말이다.)
난 프로그램을 이렇게 처음 배우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기본적인 컴퓨터활용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연습량이 2배 이상이라서 그랬던 것일수도 있지만 툴을 다루는 손가락 속도자체가 남달랐다. 그 학원을 계기로 내 전공이 관련학과에 맞게 바뀌기도 했고 대학을 가서도 나의 프로그램 실력은 동급생들과 많은 격차가 났다. 고등학교 때 질투했던 그 애들과도 같은 상황에 내가 놓인 것이다. 안타까운 건 성인이 되어보니 프로그램은 단지 기본능력에 불과하단 것이었고 전달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컴퓨터 툴을 다루는 학과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는 프로그램 자체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학생들이 많다. 사실 프로그램 같은 건 대학교에서 제대로 알려줄만한 환경이 안되기 때문에 독학을 하던 학원을 가던 해야하는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난 그런 스트레스는 덜고 학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진 채 입학한 셈이었다.
내가 현대문물에 관심을 가지고 어떤 것을 내놓아도 스스로 독학할 수 있는 자신감과 능력이 생겨난 건 이런 스토리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동기는 같을 수 없겠지만 처음에 모를 때는 그냥 아무 예제나 쌓아놓고 무조건 다 해내는 것을 목표로 끝내야 하고 나처럼 학원을 다닌다면 학원에서 내주는 과제양가지고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돈 아까운 줄 알고 피같은 돈을 낸만큼의 뽕을 뽑고 싶다면 학원이 알려주는 것 이상의 뭔가를 쟁취해야한다. 그리고 대개 학원 강사님들은 그런 자세를 오히려 좋아하기 때문에 많이 도와줄 것이다.
사실 가장 중요한 능력은 따로 있다. 바로 검색 능력이다. 아직도 네이버가 보여주는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물안 개구리들이 많다. 네이버도 하나의 기업이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는 부분만 우리에게 제공한다. 우리가 공짜로 누리고 있다고 여기는 것들은 알게 모르게 우리의 정보를 빼앗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고 있다. 요점은 네이버도 네이버만의 공간을 짓고 한계를 명확하게 그어놨다. 우리가 원하는 정보가 네이버에 없다고 이 세상에 없는 게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검색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구글링을 잘하냐못하냐로 판단해도 모자람이 없다. 괜히 구글에서 하는 검색을 '구글링'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사실 프로그램을 독학하는 사람이나 개발자는 구글에서 살아야 한다. 구글도 네이버와 마찬가지로 보여주고 싶은 결과만 보여줄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는 구글에 다 있다. 네이버에 없는 건 구글에 있지만 구글에 없는건 네이버에도 없다. 우리가 네이버와 구글의 특징을 이해하고 적절하게 사용해야 하는 이유다.
이 글을 읽는 사람이 캐드, 포토샵, 3D관련 툴, UG-NX 등 뭘 배우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걸 잘하고 싶으면 무조건 예제를 많이 해보고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스스로 검색해서 기능을 찾고 해법을 찾아내는 근육을 길러야 한다. 그러다 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는 기능도 스스로 찾아내서 적용해가며 사용할 수도 있다. 물꼬가 트이면 본인이 알아서 잘해내는 시점이 온다. 그전까지는 일단 예제를 계속 연습하는 수밖에 없다. 명심해야할 건 프로그램은 기본능력이라는 점이다. 문제는 표현력, 전달력이다. 내가 결과물을 보여줘야할 대상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려면 프로그램을 다루는 소양은 아주 기본 중의 기본, default 라고 할 수 있다. 좋은 결과를 맞이하고 싶다면 기본연습을 통하여 프로그램을 능숙하게 다뤄야 한다. 복잡한 기능을 다룰 필욘없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기본기능에만 충실하면 된다. 대부분 사람들은 기본기능을 잘 다루지 못하니 그 이상을 해내지 못하는 것이다. 축구만 기본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여튼 비싼 학원비를 내고 캐드든 포토샵이든 배우는 사람이 있다면 내 글을 보고 좋은 자극을 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