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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6. 2023

하마터면 플랫폼의 노예가 될 뻔 했다

내 안에 허영심을 발견하다


읽기가 드디어 쓰기를 만나다

난 독서를 통해 인격에 균열이 생기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원래 난 물결이 흐르는 대로 둥둥 떠다니는 죽은 물고기처럼 살고 있었지만, 책을 읽기 시작하면부터는 세상의 물결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주변에는 그렇다 할 멘토같은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책만 펼치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들을 아주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 독서를 하면서 그 어떤 곳에서도 배울 수 없는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고, 그런 무기를 내면에 조금씩 심어놓으니 상상도 하지 못한 통찰력이 피어났다. 그래서 책에 점점 더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독서는 거의 삶의 의무처럼 여겨졌다. 심심하면 읽었고, 틈만 나면 읽었고, 읽지 못하면 뭔가 잘못 살아가고 있는 기분까지 들었다. 독서는 포기할 수 없는 활동이었다.


하지만 나의 독서에 제동을 거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글쓰기다. 현명한 사람들은 서평을 쓰거나 나름의 기록을 하면서 독서의 효과를 극대화하는데 어리석게도 난 오로지 읽는 것밖에 하지 않았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인상깊은 문장이 있을 때마다 따로 기록은 해놓았다는 것이다. 글쓰기는 우연한 계기로 하게 되었다. 작년에 이직하고 나서 미라클모닝을 시작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목적도 목표도 없이 그저 삶을 개선하고 싶은 마음에 막연하게 시작했던 글쓰기를 통해서 처음 책을 접했던 만큼의 좋은 자극을 받고 있다. 내 안에 이런 것들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수많은 글들을 써내려갔다. 그러면서 그동안 기억나지 않는다고 여겨왔던 책 속의 수많은 문장들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젠 내가 독서를 하는 목적이 읽기 위해서 쓰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사실 책을 읽어온 세월도 10년이 넘다 보니 이 책이나 저 책이나 큰 범주 내에서는 접점이 겹치는 내용이 많았다. 책을 구분 지어놓은 장르가 의미없어 보일 정도로 모든 책은 한 가지로 귀결되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글쓰기를 더욱더 하고 싶고, 이제 내 시간을 읽기보다는 쓰기에 더 많은 투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도서 인플루언서라는 망상

하지만 난 최근에 그 어느때보다도 미친듯이 책을 빨리 읽어내려가고 있다. 그놈의 도서 인플루언서 때문이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려면 통일된 주제의 꾸준한 글을 올려야 한다는 공략 때문에 살짝 과할 정도로 많은 책을 기계처럼 읽어내고 있다. 그만큼 책의 내용을 토대로 글도 많이 쓰고는 있지만 뭔가 찝찝한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도서 인플루언서가 되어봤자 큰 변화도 없을 뿐더러 네이버가 주는 라벨 하나가 전부일텐데 난 뭐때문에 그리 매달렸던 것일까. 도서 인플루언서를 목표로 블로그 운영을 하다 보니 확실히 제약이 많이 따르는데 그중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독서성향이 블로그 포스팅을 위한 것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몰랐는데 스스로 이런 현실을 느끼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많아졌다.


2023년에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적어봤다. 책 출간, 브런치북, 뉴스테러 발행, 네이버 도서 인플루언서 선정, 체중감량 정도가 그 목표들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 우선순위를 나눠봤는데, 정작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는 도서 인플루언서는 중요도가 최하위권이었다. 그럼 나는 대체 왜 이렇게 블로그에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어가며 독후감을 쓰고 있는 것일까. 이것도 일종의 미루기일까? 내가 세운 목표들을 다시 천천히 훑어보니 도서 인플루언서가 가장 만만하고 쉬워보였다. 평소처럼 책을 읽으면 되고 독후감 쓰는 건 일도 아니며, 포스팅은 템플릿을 활용하면 짧은 시간에 금방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다.

나는 더 중요한 일들의 난이도에 겁을 집어먹고,

더 쉬운 쪽으로 행동을 옮기고 있었던 것이다.


성과를 내려면 한 가지 목표를 중심으로 하루를 살아내도 모자란데, 내가 지금 하는 것들은 그 종류가 너무나도 많아 보였다. 물론 다 순환이 되는 시스템으로써 나름의 유니버스를 꾸려가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목표와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문제였다. 내 귀한 시간과 에너지가 분산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고, 더이상 외면할 수가 없다. 두루뭉실했던 불안정한 마음 때문에 조금 괴로웠는데, 확실히 이렇게 시원하게 쓰고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이제라도 이런 사실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하마터면 플랫폼의 노예가 될 뻔했다.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난 여전히 헤매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글은 이렇게 나를 또한번 구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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