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의 작별인사를 읽고
소설은 가볍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가끔 작별인사 같은 소설을 만나면 그 어떤 책보다도 책을 덮고 나서의 여운과 사유가 깊어지는 경험을 한다. 책 '작별인사'는 확실한 결말로 끝이 나지만, 그 이상의 열린 결말이 담겨있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곰곰이 사유할 만한 주제들이 그만큼 많이 담겨있다.
책 '작별인사'는 기계 문명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룬다. 흥미로운 점은 작품 속 기계들이 인간 같았고, 작품 속 인간들이 기계 같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의 신념은 꺾이지 않는 데 비해, 로봇의 신념은 갈대처럼 쉽게 움직이는 부분이 많이 나온다. 그래서 더 부자연스러운 느낌을 받으며 읽은 것도 사실이다. 솔직히 김영하 작가가 SF전문 소설가가 아니어서 이렇게 부자연스러운건가 라는 생각도 들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자체는 울림이 있었지만, 책을 구성하는 스토리는 읽는 내내 책에서 현실로 빠져나올 만큼의 산만함을 가져다주었다. 국내 도서 특유의 그 허술함이 돋보이는 느낌이 들었다.(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를 읽었을 때의 충격 때문에 눈이 높아진 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끊임없이 발전한다. 문명 발전의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기하급수적'이라는 건 보통 곱셈에 유독 약한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미래를 예측하지 못하는 인간에게는 한없는 전진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시대의 흐름을 막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환경문제를 떠올려봐도 환경을 지키려는 자보다 기술발전에 몰입하는 소수정예와 그것을 소비하려는 현재자와 대기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문제가 불거지는 속도가 잠깐 더딜진 모르겠으나, 결국 끝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인간이 한 명의 사람처럼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다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구상의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결합될 만한 일은 인류의 시작과 끝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개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인간사의 대부분은 '소수 정예'가 이끌어간다고 생각한다. 현대 문명의 발전은 소수의 인간들이 이룩한 것이다. 나머지의 다수는 그저 그것을 소비하고 따라가며 적응할 뿐이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문제들도 그 소수 정예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단지 그들이 뿌린 씨가 꽃을 피우고 있을 뿐이다. 그 소수 정예들도 결국 인간이기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인류를 움직이는 그들은 말 그대로 정예 인원들이기에 꼭 문제를 일으켜도 대단한 문제들을 일으켜주신다. 가끔 환경을 생각하고 노력한다는 기업 또는 단체를 보면 자신들이 일으킨 문제를 스스로 수습하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책임감이 결여된 채 그저 흐름에 따라가기만 하는 나머지 인간들도 문제이지만.
책 내용 중에서는 의식과 존재에 대한 부분이 많이 나온다. 나는 평소에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 중 한 명이기에, 유독 눈길이 갔다. 책 '작별인사'를 읽으며 다시 한번 느낀 점은 '나'라는 게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내가 인식하는 '나'는 생각이 만들어내는 허구의 것이 아닐까.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기자신이란 본인의 몸을 구성하는 '세포의 결합체'까지가 아닐까.
생각해 보니 인간이 '나'를 제대로 정의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아직까지 인간들은 단어로써 소통하기 때문이다. 단어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일단 단어를 인간이 만들어냈다는 것 자체가 불완전하다. 단어는 세상의 것들을 온전하게 담아내지 못한다.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더욱더 담아내지 못한다. 근데 어떻게 감히 존재를 완벽하게 설명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우리는 서로 문제없는 소통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인간관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소통은 100% 주고 받는 교환이 아니다. '그런 것처럼'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다. 우리는 대화하면서 서로 주고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각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인식이 그 전부다. 그래서 사람이 본인을 포함해 다른 사람을 완벽히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본다. 단어를 뛰어넘는 인식법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동시에 이런 생각을 해봤다. 만약 진짜 '나'라는 게 존재한다면 아마 태어나기 이전과 죽고 난 이후가 연결되어있을 것이라고. 지금 글을 쓰면서도 생각하고 있는 내 의식을 '나'라고 정의하기엔 내 몸뚱아리와 내 감각을 통해 인식하는 얄팍한 정보밖에 없다. 무한한 우주를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유한한 의식에 통제를 받고 있다.
만약 기계문명이 발달해 어떤 식으로든 지구를 정복한다면 그건 그때부터 기계가 아니라 또 하나의 인간부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종말로의 여정이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동물과 인간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또 난 동물과 식물이 다르지 않다고 본다.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기계라고 어련할까. 그래봤자 우주정신의 일부이겠지만.(책에서 나오는 표현을 빌려봤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역사가 어떻게 끝이 날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어딘가를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다는 것만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