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교의 대가로 얻은 교훈
오랜 세월 알고 지낸 친구가 있었다. 중학교 때부터 이어져 온 인연은 나와 끊어질 일이 없을 줄만 알았다. 나는 여러 경험을 통해 이전과는 많이 변했다. 세상은 더 빨리 변한다. 하지만 내 주변 사람들도 변한다는 건 깊게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우연찮게 나의 오랜 친구가 나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당황스럽긴 했지만 신기하게도 '왜 어떤 이유에서' 나를 그렇게 생각하는지 짐작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 친구의 마음을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알진 못해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주체적인 뿌리가 되는 게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친구는 현재 본인의 삶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내 친구에 대한 소식을 전해 듣자마자 마지막으로 봤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사실 그때 친구를 보자마자 느꼈던 기분이 왠지 꺼림칙했다. 오랜만에 본 친구에게 반가움을 느끼기는커녕 조금 불쾌하다는 생각이 든 건 기분 탓이라 여겼지만, 그때의 직감이 확실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어느새 나와 상반되는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평소 내가 더 이상 섞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기 전, 매번 느끼던 그런 기운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친구는 뭔가 자신의 풀리지 않는 현실의 문제를 나에 대한 악감정으로 풀고자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은 평소에 지니고 있던 삶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가 만들어낸 화살이 드디어 나에게 꽂히는 차례가 온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그 친구와 가깝게 지내던 시절, 휴대폰에서 다른 사람들의 번호를 지우는 모습을 많이 봤다. 번호가 지워지는 사람들의 죄명은 '자기필요할 때만 연락이 오는 것',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항상 난 모순을 느꼈다. 바로 그 친구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의 이미지가 곧 자기자신과 가장 가까운 모습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그 생각을 버리지 못한 게 확실해 보였다.
나는 애초에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는 사람이라며 나무라는 마음 자체를 품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이제는 그런 게 오히려 인간관계의 기본적인 성질이라고 생각한다. 모두가 필요에 의해서 맺고 끊는 게 인간관계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단지 한 번 인연이 맺어졌다고 해서 정기배송처럼 꾸준히 연락해야 하는 것을 법처럼 여기는 고정관념이 항상 문제를 일으킬 뿐이다. 그 친구는 그런 관념에 휩싸여 자신의 세계관을 점점 좁히고 있어 보였다.
만약 일정한 연락이 오가야 원만한 관계가 이루어지는 게 인간관계의 정석이라면 난 지금 왕따가 됐어야 했다. 일 년에 한 번도 만나지 않는 사람과도 이전보다 더욱더 친분이 깊어지는 경우가 많다.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관계일수록 더욱 그렇다. 인간은 굳이 만나지 않고도, 소통을 하지 않고도 서로 통할 수 있는 존재다. 눈에 보이는 것만,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아쉽지만 인간관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나로서는 그런 친구의 악감정이 크게 서운하지도 않다. 그렇게 오랜 세월 알고 지냈으면서 내게 말 한마디 없이 뒤에서만 내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게 이해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안타깝지만 원래 그 정도의 관계였을거라고도 생각한다. 다른 사람을 통해 그 친구에 대한 얘기를 접하자마자 '그냥 내 번호도 이전의 다른 사람들처럼 지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걔는 원래 그래왔던 사람이지만, 난 이제 옛날의 그때처럼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던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어차피 그와 나는 더이상 어울리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고 생각한다.
모든 일은 그냥 일어나는 법이 없다. 서서히 변해갈 뿐이다. 일어난 일 자체만 보면 갑자기 일어난 하나의 사건처럼 보이겠지만, 이미 일어나고 있었던 일이 수면위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인간관계는 살아가는 데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덧없고 부질없기도 한 것이 인간관계이기도 하다. 혼자 방구석에서 키우는 생각이 얼마나 본인의 삶을 휘두르는지, 하나의 우정이 깨지는 대가로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