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Feb 01. 2023

어쩌다 나를 향한 글

나를 해방시키다


책은 읽히지 않고 글은 써지지 않는다. 최근 들어 읽고 쓰는 것만 해도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행복을 느꼈었다. 텐션이 잠깐 죽은 걸까. 언제나 텐션이 올라야만 읽고 써지는 걸까. 왜 안 써지는지 혼자 고민해 봤다. 내 글에 대한 부족한 믿음, 읽는 자들이 내 글을 안 좋게 보진 않을까 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생각났다. 한 번씩은 내가 내 글을 두세 번 읽을 정도로 잘 썼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어떤 글은 누구에게 보여주기 부끄러울 정도로 이상한 글도 있었다. 나름대로 다듬고 다듬어서 콘텐츠로 발행하지만 아직 글근육이 별로 없어서인지 아니면 생각 자체가 어긋난 것인지 여전히 불안하다. 쉽게 말해서 현재 좀 불편한 상태다. 매일 일정량 이상의 글을 써내야 행복하다고 느끼는 요즘인데 그런 글이 잘 안 써진다. 글이 안 써진다기보다는 시작하기가 너무 어렵다. 지금처럼 손가락을 움직이기 시작하기만 해도 일단 몇 자라도 써 내려갈 수는 있지만, 지금 뭔가 함정에 걸린 것만 같은 기분이다.


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무조건 도움이 되어야 한다. 나를 비롯해서 읽는 사람에게 무조건 울림을 줘야 한다. 진정성 있는 글을 써야 한다. 진솔한 글을 써야 한다. 거짓됨이 없고 담백한 글을 써야 한다. 반복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 오타가 없고 맞춤법이 크게 어긋나지 않아야 한다. 문맥이 맞아야 한다. 콘셉트가 명확해야 한다. 읽는 자의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의 글을 써야 한다.


이것이 나의 문제였다. 이런 수많은 생각들을 하면서 대체 어떻게 글을 쓸 생각을 했을까. 저런 것들은 내가 생각해 낸 것이긴 하지만, 그런 나는 나를 도와줄 생각으로 한 생각일까. 나를 방해하고 싶어서 만들어낸 생각일까. 나는 그냥 쓰고 싶다. 가치 높은 글을 쓸 수 있으면 그만큼 좋겠지. 하지만 나도 한계가 있고 한 명의 인간이고, 내가 했던 경험들은 아직 여전히 부족하다. 세상을 이해하기엔 너무나도 넓은 우주 속에서 먼지 같은 존재에 불과하다. 어렴풋이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간다고 생각은 하지만 나보다 훌륭한 사람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다. 그냥 단념하고 나에 대한 기대를 좀 내려놓고 쓰기만 하면 되련만 뭐가 부족해서 자꾸 생각을 만들어내면서까지 나를 방해하는 건가.


나는 내 에너지를 쓰고 싶다. 얇고 길게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너무 늘어지기는 싫다. 내 시간 곳곳에 양질의 기운을 불어넣어 나름 균형 있게 살아가고 싶다. 내 에너지를 아껴서 나의 생존을 유지시켜 주는 건 고맙지만, 너무 많은 생각으로 인해 나를 괴롭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오히려 그것이 내게 독이 되어 내 생명력을 더 갉아먹을 것이다. 네가 나를 괴롭힌 덕분에 이런 글이 탄생되긴 했지만, 나는 이런 우중충한 글보다는 더 에너지 넘치고 활기찬 그런 글을 많이 쓰고 싶다. 매번 양질의 글을 쓸 수 있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난 알고 있다. 오히려 별 볼 일 없는 글을 매일 쓰는 것이 더 현실적이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좋지만, 난 꿈속에서만 살아가는 게 아니다. 현실은 현실과 꿈의 합작품이다. 그러니 그에 맞는 조율이 필요하다.


너도 어차피 나로 살아가는 동안에 나와 함께 지내는 것이라면 나에게 조금 더 상냥하게 대해줬으면 좋겠다. 있지도 않은 완벽주의 같은 것 좀 그만 따지고 그냥 행동하게끔 나를 내버려 뒀으면 좋겠다. 나름 도와준답시고 내 손발을 묶어봤자 그렇게 얌전하게 살기엔 이미 난 너무 멀리 와버렸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최대한 많이 움직이고 생각하고 깨닫고 싶다. 나의 깨달음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망상에 불과할지라도 그것들이 망상이라는 것을 깨닫는 날까지만이라도 나를 도와줬으면 좋겠다. 그런 날이 오게 되면 난 알아서 멈추게 될 것이다. 편하게 살아가는 건 죽고 나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일종의 고통이다. 난 고통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행복은 고통에서 잉태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떠돌아다니는 것들은 자기 혼자서 성립되는 것이 없다.


고통은 행복과의 마찰을 통해서만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것이고, 행복도 고통과의 마찰을 통해서만 발견되는 것이다. 그 어느 하나 쓸데없고 버릴 것이 없는 게 우주의 진실이다. 이 모든 것은 하나라고 믿는다. 너도 나도 원래는 하나였을 것이다. 그래서 더욱더 나의 손발을 묶으려 하는 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당분간은 그냥 좀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전처럼 살기엔 내가 터트리고 싶은 나의 잠재능력을 이미 많이 봐버렸다. 나의 포텐이 터져서 내가 다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진 다 해보며 살아가고 싶다. 네가 나를 돕지 않으면 나도 나를 포기할 것이다. 공생하는 건 이토록 어려운 것이다. 여태껏 너의 뜻대로 곧이곧대로 고분고분하게 잘 살아왔으니, 너도 이젠 나의 이런 간절한 부탁을 조금씩 들어줬으면 한다.


그러니 더 이상 내 행동을 가두지 마라.



작가의 이전글 플랫폼에 관한 고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