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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14. 2023

시들어버린 관계

시간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나도 한때는 그들이 전부였다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는 게 한때는 최고의 낙이었다. 추진력이 남달랐던 나는 1년 중 대부분의 소모임과 큰 행사를 담당할 정도로 친구들을 끌어모으는 데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 비해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후로는 그들과의 모임을 자주 갖지 않았다. 이젠 오히려 가려서 참석할 정도다. 특히 다수가 모이는 모임에는 더욱더 가지 않게 되고 가더라도 술을 마시지 않고 조용히 있다가 온다. 이런 현실을 이렇게 글로써 적는 것만으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난 여전히 내 친구들을 사랑하지만 내가 너무 변했다고 생각한다. 난 돌이킬 수 없을 만큼 혼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물론 내 친구들도 각자 가정을 꾸리고 자녀도 낳고 나름의 큰 변화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내면의 변화를 이루진 못한 것 같다. 여전히 고등학교 시절 그때 그 친구들처럼 느껴진다.


내가 친구들과의 관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다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기 시작한 건 친구들이 나이가 들수록 엄청 사소한 것에 토라지는 일이 많아지면서부터다. 정말 별 것도 아닌 것을 물고 늘어지며 당장에라도 안 볼 사람처럼 굴었다. 그것도 돌아가면서 한 명씩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이때까지 우리가 쌓아왔던 추억들은 대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난 그리 어렵지 않게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안타깝지만 이런 관계조차 언제 깨져도 이상하지 않은 그 정도의 관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마 그런 마음이 들기 시작한 후부터 난 이전처럼 열정적으로 친구들과의 만남을 갖지 않게 되었다.



말이 없어질 수밖에

시간이 흐르면서 친구들이 점점 사회에 물들기만 하고 자신의 생각은 하나도 없는 빈껍데기와 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다수의 인원이 모일 때면 대체 무슨 말이 오가는지 모를 정도로 쓸데없는 이야기들만 주고받았다. 나이가 들수록 예전처럼 다 같이 모이는 게 쉽지가 않지만 그에 비해 너무 시간이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의미 없는 시간으로 여겨지는 모임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세상이 불어넣은 고정관념에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선 이젠 내가 별종이 되어버렸다. 내가 해나가는 모든 것들은 그들에겐 지극히 비현실적인 것처럼 취급당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더 그들 앞에 있으면 할 말이 없어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으로써 대화를 주고받는 게 아니라 그저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들을 자신의 스토리라 여기며 그런 소식들을 주고받는 것에 불과해 보였다. 그래서 난 점점 그냥 말없이 자리만 지키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내가 가만히 있는 것조차 그들은 용납하지 못했다.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면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내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그저 말이 없다는 이유로 무슨 일이 있는 사람처럼 취급하기만 했다.



삶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

어쩌다가 이런 지경까지 오게 됐을까. 정말 내가 너무 많이 변한 것일까. 아니면 그들이 이상해진 것일까. 친구들과 다 같이 모이는 자리를 가질수록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절실하게 떠오른다. 친구라는 관계조차도 여러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게 분명해 보였다. 서로 친한 친구들이지만 어쨌든 듣는 자가 많은 것 때문인지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선 서로가 조금 다른 기운을 풍기는 것이 느껴진다. 단 둘이서 보거나 4명 이하의 인원이 모였을 때와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젠 그들 사이에 끼면 할 말이 없어서 말을 하지 않게 된다. 그저 조용히 자기들끼리 떠드는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만 싶지만, 그들은 그것조차 용납할 생각이 없다. 그렇다고 말할 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이래서 내가 친구들을 만나면 기가 빨리나 보다.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볼 마음이 없어지나 보다.


새벽기상을 시작하고 나서 그 생활패턴이 내게 습관으로 자리 잡힌 뒤부터 시간이라는 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그 귀한 시간들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정말 가치 있고 뜻깊게 쓰고 싶어졌다. 친구들과 나는 그런 시간을 대하는 태도에서 아마 큰 차이가 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이젠 내가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들과의 모임보다 차라리 방구석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이 내겐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이다. 그들과의 만남보다 사랑하는 나의 아내와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 것이 내겐 훨씬 더 행복한 일이다.


난 일부러 그들과 애써 멀어지려 하진 않겠지만 단지, 내가 정말 아끼고 사랑했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이렇게 시들어버렸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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