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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찬물을 끼얹으며

마음을 씻겨내다

by 달보

keyword, 찬물


찬물을 끼얹을 때마다 왠지 '나는 할 수 있다'라는 기분이 드는 건 기분 탓일까.


찬물은 두렵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갑자기 찬물을 몸에 뿌리는 건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어난다. 난 원래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샤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샤워하기 싫은 마음이 항상 증폭되는 게 괴로웠다. 그리고 물도 아까웠다.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샤워부터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나의 의지와 씨름을 하는 건 너무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 매일 나의 마음과 겨루지 않기 위해서 욕실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찬물을 몸에 갖다 대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몸이 놀래거나 감기가 걸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예상외로 찬물을 바로 몸에 끼얹는 것은 샤워하는 것에 대한 귀찮음을 씻겨내주었다. 예열하는 과정을 없애는 것만으로도 샤워하는 게 한껏 수월해졌다. 몸에 바로 물을 뿌리면 항상 차갑지만 몸은 언제나 순식간에 적응했다. 아무리 차가운 물이라도 3초 정도만 견디면 금세 괜찮아졌다. 오히려 잠시 후에 나오는 뜨거운 물이 너무 빨리 나온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따뜻한 물로 샤워하는 게 더 좋긴 하지만.


그렇게 난 뜨거운 물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찬물을 틀어 샤워하는 것을 습관으로 들이는 데 성공했다. 어떻게 보면 뜨거운 물이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씻는 건 내 평생의 습관이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말도 있듯이 습관은 정말 바꾸기가 힘들다. 하지만 나의 행동을 제한하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 밖에 없다는 것을 써먹어보고 싶었다. 그렇게 난 생각을 바꾸고 내 평생의 습관을 바꿀 수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매일 샤워를 할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찬물을 몸에 끼얹을 때마다 왠지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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