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잘도 버텨왔다

가볍게 떠올려보는 과거

by 달보

keyword, 지금까지


주변에서 풍기는 기운에 의해 나도 모르게 어릴 때부터 책임감을 지닌 채 살아왔다. 말이 점점 없어지고, 혼자 생각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사람들과는 잘 지냈다. 하지만 깊게 지내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남들에게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내가 그들에게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주변에 사람들이 많은 데 비해 난 혼자서 잘 버텨왔다.


하지만 유독 내 눈길을 끄는 존재들은 있었다. 바로 자기 주관이 또렷한 애들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린 나이에도 왠지 자기 생각이 또렷한 애들은 풍기는 기운이 달랐다. 단순히 까불기만 하는 애들과는 질이 달랐다. 그런 친구를 만나면 친분이 약한데도 불구하고 어떤 생각을 품고 살아가는지 대뜸 질문하기도 했다. 책임감을 짊어지고 살아가기만 하고 정작 행동으로써 뚜렷한 성과를 이룬 것이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그런 애들이 유독 눈에 밟혔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언제부턴가 주변 사람들은 나보고 주관이 또렷한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주관이 매사 흔들리면서 많이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예전에 주관이 또렷한 애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품었던 표현들을 이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향해 언급하는 경험을 겪으니 기분이 이상하긴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었나 보다. 난 그런 애들처럼 되고 싶었나 보다. 내 눈에 밟혔던 애들의 이름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런 애들을 바라보며 속으로 느꼈던 감정은 정확하게 기억이 난다.


난 나만의 중력을 갖고 싶었다. 예전엔 허공에 둥둥 떠다니는 인생을 살아왔다면 이제는 나만의 시공간을 형성해 가는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어딜 가도 난 책을 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를 만났다고 말하고 다닌다. 하지만 정확히 언제 어떻게 무엇 때문에 내가 이렇게 변해왔는지 자세하게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변화는 서서히 일어나는 법이고 둔한 내가 그 모든 것들을 기록하진 않았기에 그저 어렴풋한 기억으로나마 되살릴 뿐이다. 삶은 나의 의도보다는 우연에 의한 것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내가 아무리 빈틈없이 계획해도 그런 것들조차 우연과 운의 요소가 개입하여 결과는 내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으로 뻗어나간다.


어떻게 보면 어려운 삶이고, 다르게 보면 그만큼 흥미롭고 재밌는 세상살이다. 그런 알 수 없는 무궁무진한 세월을 여태껏 잘도 버텨왔다. 지금 생각하면 쏜갈같이 지나온 시간들이지만 그 모든 순간들을 살았던 당시엔 영겁의 세월처럼 느껴지는 순간도 많았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것치곤 대부분의 것들을 잘해왔다. 그러니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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