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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31. 2023

내가 문화를 거부하는 이유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의 본질에 대한 눈이 떠지면서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책을 읽은 것도 생각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지만, 모순적이면서도 이상하지만 끊임없이 반복되는 사회현상들이 문화를 거부하는 마음을 키운 주된 원인이었다.




낡은 문화는 왜 교체되지 않을까

문화는 그 나라만의 고유한 분위기, 특징, 색감 또는 암묵적인 룰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문화는 사람들이 특정 시기에 특정 행동을 비슷하게 함으로써 형성되어 온 것이다. 문제는 이런 문화를 너도 나도 무조건 지켜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여기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런 경향이 짙은 사람은, 보편적인 문화를 거부하고 자신과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손가락질 하며 문화를 지키는 자기 자신을 추켜세운다.


문화는 낡았다.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와는 맞지 않는 옛 것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들어 있다. 여러 문화들의 취지를 짚어보면 지금의 세상과 들어맞지 않는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낡은 문화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건, 많은 사람들이 그저 맹목적으로 따르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사회가 의도적으로 심어놓은 것들에 감염되어 자의식의 일부분이 이미 세뇌되어 있을 확률이 높다. 특히 기성세대들은 이유를 따져보지도 않고 자신들이 따라왔던 문화를 지키려고 애를 쓴다. 그리고 그것을 따르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버릇이 없다거나, 몰상식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린다.


호기심이 가득했던 어린 시절의 내게 문화들의 본질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자세히 설명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내가 지금처럼 문화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내가 순수한 마음으로 질문을 했을 때 엇비슷하게라도 대답을 했어야 했다. 아니, 오히려 뜻이 완전히 어긋나더라도 각 문화에 대한 자신들만의 견해를 자신 있게 주장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나의 질문에 납득할 만한 대답을 하지 못했다. 자신들이 그동안 너무나 당연스럽게 여겨오던 문화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어른들은 '그냥'과 '당연'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덕분에 난 속이 빈 껍데기마냥 아무 생각없이 살아가는 어른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고, 모든 것을 스스로 생각해낼 수밖에 없었다.


유독 기성세대들이 이런 경향이 짙은 이유는 넓은 세상을 경험할 만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의식을 확장할 수 있는 영역의 한계는 실제 그들이 활동하는 현실의 범위까지였을 것이다. 지금처럼 마음만 먹으면 세상의 모든 것들을 경험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이상으로 생각하고 상상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세월의 흔적이 배인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근거가 형편없는 자신들의 낡은 문화를 젊은 사람들에게 강요해도 이젠 별 효과가 없다. 요즘은 '이렇게 해야 착한 아이가 된다'라는 어른들의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면서, 자신들조차 그렇게 살고 있지 않다는 진실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하기 시작한 밀레니얼 세대 이후의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모든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다. 앞뒤가 맞지 않고 의미가 퇴색된 전통이나 문화를 곧이곧대로 따르기엔, 그런 것들을 지키지 않아도 세상은 원활하게 굴러간다는 것을 너무나도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들

문화는 과거의 산물이며, 누군가의 생각이었을 뿐이다. 사람마다 생각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만 생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같은 문화라도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어른에게 깍듯하고, 술잔을 따를 때 두 손으로 따르는 사람을 보고 보통 예의가 바르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고 해서 싸가지 없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것저것 지켜야 한다는 이유가 뭔가 탄탄하면 납득이라도 하겠지만, 대부분은 알맹이가 없는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저 이전 세대가 그렇게 해왔다는 이유로 자신도 아무 생각 없이 하게 된 것을 뒤늦게 잔가지를 붙여가며 구구절절 설명해봤자, 취지가 어긋나 있는 건 설득력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런 문화를 일종의 법처럼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항상 문제는 자신과 생각이 다른 자들을 판단하는 잣대가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놈의 예의범절만 해도 상당히 오류가 많다. 예의는 겉으로 하는 행동보다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아마 최초로 예의라는 개념을 만들어 낸 자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태도에 관한 가르침을 전하고 싶었을 거라고 감히 짐작해 본다.


예의를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사를 하지 않고, 명절 때 부모님에게 용돈을 주지 않거나, 술잔이 비었는데 술을 따르지 않는 것만으로 상대방을 예의없는 사람이라고 판단해버린다. 겉모습만으로는 사람을 제대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함부로 판단하고 싶은 욕망을 제어하지 못한다.


자신의 기대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이 과연 예의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단지 자신의 머릿속에 든 고정관념과 대립되는 행동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문화는 곧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뭉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생각은 시대의 흐름을 타며 언제나 바뀌게 된다. 아무리 전통이 깊은 문화라 할지라도, 무조건 옛날의 방식 그대로만 고수하기엔 무리가 있다.


모든 것이 그렇지만, 문화도 강요를 하게 되면 거부감이 일어난다. 그리고 본질로부터 한참 벗어난 문화는 시간이 갈수록 그 정체가 드러나기 마련이다. 요즘 여러 문화들이 점점 바뀌고 있는 건 세상이 바뀌어서 그런 게 아니라, 애초에 문화 자체가 많은 오류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모든 문화는 오류가 없을 수가 없다. 문화는 불완전한 인간의 생각이 만들어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통문화에 대해서 깊은 사유를 하거나, 의심을 해본다면 삐걱거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세대적인 갈등이 생기는 이유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다.


현명하게 살아가고 싶고 시간과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쓰고 싶었던 나는, 단지 우리나라의 문화라는 이유만으로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시대와 어긋나 버린 문화들은 의미가 퇴색되어 가치가 없어지기 마련이다. 다들 그래왔다는 이유로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을 굳이 무리해 가면서까지 따라야 될 필요는 전혀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지켜야 될 단 한가지의 문화

이유를 불문하고 살면서 지키고 따라야 하는 단 한 가지가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본성'이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큼 진실된 건 없고,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한다는 이유로 그들을 따라하며 살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문화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그동안 삶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쌓아왔던 본인만의 고유한 가치관이다. 생각과 행동의 원천은 그곳에서 나와야 한다. 하지만 세상에 저항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뼛속까지 세뇌가 되는 바람에, 자신의 모든 행동양식의 소스를 엉뚱한 데서 얻어가는 사람들이 많다.


자신의 본성을 따라 당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본인의 생각과 행동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도 단단하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뜻이 맞지 않는 사람들에게 애써 동의를 구하지도 않는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독보적인 인생을 살아간다.


사실 인생은 '나'로 태어났기 때문에 '나답게' 살아가면 그만인 것이다. 국가에 소속된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자체적인 문화가 있다는 것은 커다란 행운이지만, 그 문화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할 정도로 세뇌가 된다면 그건 매우 불행한 일이다. 문화를 깊게 사유하지 않으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한 나라에 퍼져 있는 문화가 실생활에 적용되고 있는 사례와 갈등을 유심히 관찰하기만 해도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게 주어진 유한한 재화는 시간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도 제한적이다. 자신과 세상에 이로운 영향을 끼치는 것들에 나의 소중한 에너지와 시간을 투자하기 위해서라도 문화로부터 세뇌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예의를 지키고 표현하는 방법은 정해져 있지 않다. 전통이라고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법은 없다. 나보다 오래 산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존경스럽진 않다. 나보다 덜한 사람도 없고, 나보다 더한 사람도 없다. 인생은 본인을 중심으로 흘러가야 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낸 것들에 휘둘려서는, 인생을 현명하고 조화롭게 살아가긴 힘들 것이다.




세상에서 꼭 지켜야 할 유일무이한 전통문화가 단 한 가지 있다면, 그건 바로 자신의 본성이다. 이 우주에서 자신의 본성만큼이나 진실되고 순수하며 올바른 건 존재하지 않는다. 자기 자신의 본성에 맞게 세상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만큼 뜻깊고 훌륭한 인생은 없다. 남들의 생각에 얹혀 살아가는 걸 과감히 거부할 줄 알고, 진정한 자신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한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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