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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0. 2023

부모들은 뭐가 그리 미안할까

부모들의 못 말리는 마음

세상의 부모들은 항상 자식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간다. 내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나의 부모님도 내게 항상 미안하다고 한다. 아버지는 겉으로 내색은 하지 않지만 인간의 언어가 아닌 우주의 언어로 내게 그런 감정을 전달하시고, 여전히 세상 순수함을 지니고 있는 어머니는 대놓고 맨날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들은 대체 뭐가 그리 미안할까.




전혀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

평소에 부모님이 내게 미안하다고 할 때마다 매번 드는 생각이 있다. 그건 바로 '전혀 미안할 필요가 없는데'라는 생각이다. 난 그럴 때마다 실제로도 내게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고 있다. 내가 부모님에게 미안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짜 괜찮기 때문이다. 나도 어릴 때는 그들을 잠시 원망했던 적이 있었지만, 세상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한 후로부터는 그들에게 기대 자체를 하지 않게 되었다. 그들에 대한 기대가 사라진 공간에는 나를 키워준 데 대한 존경심만 남게 되었다. 난 진심으로 그들을 자식들의 독립을 이끌어 낸 훌륭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


그렇다고 우리 아빠, 엄마가 내게 대단한 것을 해주신 건 아니다. 오히려 가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가정환경을 경험하게 해 주셨다. 그들이 내게 미안해하는 건 더 나아지지 않는 삶을 나와 내 동생에게 적나라하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더 잘해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난 더 나은 삶이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가난한 가정환경을 바라진 않지만, 그런 환경조차 하나의 배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이유로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은 그 자체로 이미 내게 커다란 배움이 된다.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 하나하나가 내겐 커다란 깨달음으로 다가온다. 난 그들을 통해서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다. 그들이 없었다면 이 기적 같은 삶을 살아가지도 못했을 것이다.


난 이런 나의 마음을 감출 생각이 전혀 없다. 오히려 부모님에게 매번 드러내곤 한다. 내 진심을 솔직하게 다 말한다. 진짜 내게 더 이상 미안해할 거 없다고. 난 이미 잘 살아가고 있다고. 근데 뭐가 그렇게 미안한 게 많냐고. 하지만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는 이상 그 마음은 영영 모를 것만 같다. 내가 아무리 내 마음을 전달해도 받아들일 생각을 않는 건지, 알고도 어쩔 수 없는 마음의 작용이 일어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들은 하늘이 아니었다

내가 나를 낳았던 부모님의 나이와 비슷해졌을 때 깨달았던 건 그들도 하늘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엔, 부모님을 얼마든지 원망해도 되는 훌륭한 핑계가 있었다. 그 핑계는 바로 '부모들은 모르는 게 없는 진정한 어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혼자서 밥도 먹지 못하는 약해 빠진 생명으로 태어나 그들의 보살핌 속에서 자라다 보니 그들의 존재는 내게 '신' 그 자체였다. 그래서 나도 나를 키워준 부모님이라면 모르는 게 없고, 그들의 말은 다 옳으며, 그들이 시키는 대로만 하면 성공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부모들은 여전히 미숙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깥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의 눈에는 세상의 진리를 모두 깨우친 사람처럼 보일지 몰라도 막상 그들의 내면 속에는 엄청난 두려움과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알고 보니 부모도 한 명의 인간이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어릴 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만큼 기대를 하고 실망도 했던 것이다.


내가 지금 부모님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건 나쁜 뜻이 아니다. 그들도 인생을 처음 살아보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뜻한다. 오히려 그들에게 내 멋대로 기대하고 실망했던 나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는 것을 뜻한다.


난 매일 새로운 하루를 살아간다. 살아본 적 없던 하루를 매일 맞이한다는 말이다. 내가 그렇다는 것은 부모님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단지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 태어나 살고 있었을 뿐이지,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삶을 배워간다는 건 그들이나 나나 똑같았다. 유일한 차이점은 난 나보다 먼저 살아간 그들을 보며 배우고, 그들은 자신들보다 늦게 태어난 나를 보며 배워간다는 것뿐이었다. 부모란, 그런 관계에 의한 배움의 대상이 서로를 향해 있는 것 말고는 자식과 전혀 다를 게 없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그런 이유로 훗날 나와 함께 성장하게 될 아이에게는 되도록 미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낳은 자식이라고 해서 무조건 내가 모든 걸 다해줘야겠다는 책임감은 갖지 않을 것이다. 그들도 나와 함께 배워가며 성장하는 또 다른 인격체라는 생각으로 동등하게 존중할 생각이다.


하지만 또 막상 부모가 되어 보면 내가 예상하지 못한 감정들에 휘말릴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나만의 중심을 금세 다시 찾을 수 있다고 믿는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심이 흔들리기 마련이지만, 관건은 다시 중심을 바로 잡는 과정에 있다고 본다. 더불어 지식보단 지혜를 물려줄 수 있는 아버지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할 것이다.


그리고 미안하다는 말 대신,

고맙다는 말을 할 줄 아는

부모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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