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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5. 2023

친한 친구가 뒤에서 내 욕을 하고 다닌다

덧없는 인간관계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한때는 인간관계에 대한 그릇된 집착 덕분에 수많은 사람들과 연락을 유지하며 살았었다. 마치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다'라는 말을 직접 만들어낸 사람처럼 나를 스쳐 지나간 모든 사람들과의 인연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었다. 하지만 독서 때문인지 혹은 본능적으로 인간관계에 대한 망상을 깨달은 건지는 몰라도, 어느 시점부터 모든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관계를 정리한 지금도 연락처에 저장된 사람들이 많다고 느낀다.


현재 내 아이폰 연락처엔 스페셜리스트밖에 남아있지 않다. 이제 내게 남은 친구들은 연락을 주기적으로 하지 않아도 언제나 서슴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고, 꽤 오랜 세월 동안 알고 지낼 사이들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역시 살다 보면 얼마든지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일이 생겼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우연히 아는 지인과 통화를 하던 도중, 친한 친구가 뒤에서 나를 욕하고 다닌다는 불편한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나와 어린 시절부터 친했고, 우린 단 한 번의 트러블도 없이 잘 지내왔던 관계라서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상상한 적도 없었다.


하지만 크게 당황하지는 않았다. 미리 예견하진 못했어도, 이번 일이 어쩌면 정해진 수순을 밟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겨졌다. 친한 친구가 뒤에서 나를 욕하는 게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것만큼 부자연스러운 것도 없지만,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를 마지막으로 봤을 때 뭔가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몇 달 전, 그 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가 또렷하게 기억난다. 난 어느 정도 나이도 들었고,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본다는 생각에, 소개팅한 여자와 처음 만날 때처럼 깨끗하게 씻고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서 약속장소에 나갔다. 하지만 내 눈앞에 나타난 그 친구는 면도도 하지 않은 얼굴에 후줄근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었다. 예전과 달리 인상이 좋지 않았고, 그를 감싸고 있는 부정적인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친한 남자들 사이에서는 오히려 그 친구처럼 편한 차림으로 나오는 게 일반적이긴 하다. 하지만 난 그때 왠지 '그 친구의 인생이 잘 풀리지 않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가 변한 건지 그 친구가 달라진 건지는 몰라도,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둘 사이에 결로현상이 일어날 만큼 온도차가 많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땐 무리 없이 서로 웃으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나름 좋은 시간을 보냈지만, 마음속으로는 서서히 거리감을 두기 시작했다.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부정적인 기운을 풍기는 사람과는 어울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난 살아오면서 많은 친구들과 친해졌다가 멀어지는 과정을 자주 겪어서 그런지, 바람처럼 인생에 왔다가는 '친구'라는 것에 큰 미련을 두지 않는 편이다.


난 내게 소식을 전해준 그 지인에게 '왜 나를 욕하고 다니는지'에 대한 이유를 듣기 전부터,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인생이 풀리지 않는 사람이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지 못하거나, 문제를 알아도 해결할 의지가 없다면 충분히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난 그저 그 레이더망에 재수 없게 걸린 것뿐이다.



현실회피

그 친구가 나에 대한 욕을 하고 다니는 건 내가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 당시 그 이유를 들었을 땐 아무런 감정의 동요도 일어나지 않았다. 먼저 연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악감정을 품는 건 타당성이 빈약한 핑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난 그의 주장이 처음부터 끝까지 망상일 거라고 확신했다. 우린 원래부터 서로 연락을 자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나름 친하긴 했어도, 학창 시절 이후로 그와 나는 틈날 때마다 보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 각자의 무리가 따로 있었고, 어쩌다 한 번씩 만나는 그런 사이였다.


내가 아쉬운 건, 그가 내게 서운하게 생각하는 부분에 대해서 단 한 번의 대화도 시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언제부터 그런 건지는 몰라도 자기만의 기준으로 나를 판단하고 그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을 혼자서 키워온 듯했다. 그는 결국 나와의 그 오랜 추억을 저버리고, 오로지 방구석에서 '생각'만으로 나와의 관계를 절벽 뒤로 밀어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반적인 관계였다면 진작에 전화번호를 차단하고 인연을 끊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을 떠올리며 썩 내키진 않아도 마음을 열고,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는 나를 피했다. 그는 내게 당당하지 못했고, 자기 자신에게도 솔직하지 못해서 내가 마지막으로 건넨 기회를 잡지 못한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생각이 있었다면, 정말 그의 근본적인 마음의 문제가 나였다면, 내가 먼저 만나자고 연락을 건넸을 때 그 친구는 나를 피하지 않았어야 했다.


그는 먼저 연락하지 않는 내게 불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인생이 불만인 것이다. 얌전하게 잘 살고 있는 나를 죄인취급하는 동안만큼은 마주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현실로부터 도망칠 수는 있겠지만, 그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면 그의 인생은 꼬일 수 있는 최대한으로 꼬이게 될 것이다.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는 언제나 본인만이 쥐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 어떤 문제라도 스스로 먼저 해결하려고 나서지 않는다면, 방구석에서 손가락만 빨면서 행운이 일어나기만을 빌어야 할 것이다. 어떤 문제이든간에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오로지 자기 자신밖에 없다. 그건 하나의 권한이자 능력이며 축복이다.



인간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가끔 내 친구처럼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것에 대해서 안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원래 사람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는 동물이다. 그저 주기적으로 안부를 묻는 것조차도 관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연락을 하는 것이지, 그런 사람들이라고 해서 무조건 옳다거나, 정이 많다거나, 예의가 바른 게 아니다.


상대방이 먼저 연락하지 않는 게 꼴사납거든 본인이 먼저 연락을 하면 간단하게 해결될 일이다. 하지만 그런 고정관념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은 먼저 연락하는 것을 '지고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연락을 먼저 하니 마니의 문제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본인도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자신에 대한 메타인지가 현저히 부족하며, 본인보다는 남들에게 관심이 지극히 많다는 특징이 있다. 마음속에 가득 들어찬 내면의 응어리를 풀어낼 생각은 하지 못하고, 그저 남을 깎아내리는 것에만 몰두한다.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각자만의 방식이 있고, 에너지를 주고받는 방식도 천차만별이다. 그동안 알고 지낸 세월은 까맣게 잊은 채, 아무 의미 없는 연락의 빈도수에만 집착하여 관계에 균열을 내는 사람은 진작에 인연을 끊어내는 게 현명한 방법이다. 굳이 그런 사람을 내 삶에 들일 필요는 없다.




이번 일을 계기로 인간관계에 대한 허무함을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 친구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쳐내지 못한다면, 내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타깃으로 삼고 모든 탓을 떠넘길 것이다. 반대로 그 친구가 어떤 계기를 통해 인생이 풀리고 다시 평온한 상태로 돌아간다면, 나와의 관계는 자연스럽게 회복될지도 모른다.


언제나 피할 수 없는 불편한 진실은 내가 손가락질하는 대상이 나와 가장 비슷한 사람일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 사실을 가슴에 품고 산다면 눈에 거슬리는 사람을 볼 때마다 상대방을 욕할 게 아니라, 자신의 문제점을 발견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을 본인이 성장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라고 여기며,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는 혜안이 뜨이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렇게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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