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
장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
군생활이 편해질 때쯤 너무 할 게 없어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처음엔 비교적 부담이 적은 소설부터 읽었지만, 원래 자기계발서를 읽었어야 될 사람처럼 어느새 나도 모르게 자기계발과 의식성장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었다. 난 자기계발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고 들어본 적도 없었다. 단지 유독 눈길이 가는 제목의 책들을 읽다 보니 그런 책들을 읽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재미없는 책들은 실제로 내가 변하고 달라지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다. 난 그런 성장하는 기분이 좋아서 자기계발서에 푹 빠지게 되었다.
난 지금까지도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고 있다. 예전보다는 읽는 책의 범위가 훨씬 다양해졌지만, 여전히 내 눈길을 끄는 제목의 책들은 거의 자기계발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책들이다. 하지만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생각이 한 가지 있다면, 난 자기계발서를 '자기계발서'로 보지 않는다. 그냥 하나의 '책'이라고 본다. 한 권의 책이 자기계발서로 분류가 됐다고 해서 꼭 자기계발서라고 단정 짓고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을 흘리지 못하면, 책의 내용과는 관계없이 본인도 모르게 장르를 중심으로 책을 평가할 수도 있다.
장르의 한계는 스스로 정하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를 읽고 본인과 결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자기계발서라는 장르 전체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가끔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의견을 들어 보니 틀린 말은 없었고, 내가 생각해도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다만, 모든 책이 자기계발서의 범주를 피해갈 수 없다는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장르는 필요에 의한 구분점일 뿐이다. 사람마다 책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책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뭔가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장르같은 건 신경 쓸 부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단지 책을 쓴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을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고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가 중요한 요소라고 보기 때문이다. 본인이 읽었던 책이 별로라고 해서 그 책이 속한 장르 전체를 비판하는 건 무리가 있다고 본다.
따지고 보면 자기계발서가 아닌 책이 있을까. 자기계발은 '내면에 잠재하고 있는 능력이나 사상 따위를 일깨워주는 것'을 뜻한다. 자기계발의 참뜻을 고려하면 그 범주를 피해 갈 수 있는 책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동화책을 읽어도, 다이어트에 관한 책을 읽어도 사람은 속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떤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깨달음을 얻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리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운동화 사업에 대한 사업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좋은 책이란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요소들이 가득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독자가 하는 생각의 퀄리티는 책의 내용과는 큰 관계가 없다. 수준 높은 책을 읽었다고 해서 읽는 사람이 훌륭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하지 못했을 생각, 이 책이 아니었더라면 스스로에게 하지 않았을 법한 질문들이 독자가 얻을 수 있는 최상의 가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자기 자신의 배움과 성장에 있어서 책의 내용 따위는 중간 매개체 역할 이상은 되지 못한다.
깨달음은 스스로 얻는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은 생각보다 효과가 없다
난 내가 읽어온 책들을 돌이켜 보니 자기계발서를 많이 읽었던 것뿐이지, 평소에 '자기계발서를 읽어야지'라고 생각하며 책을 읽은 적은 없었다. 단지 끌리는 제목의 책이 있으면 목차와 약간의 내용을 훑어보고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집어 들었을 뿐이다.
생각보다 자기계발서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꽤 많았고, 그들의 주장은 구체적인 방법이 없다거나,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다거나, 너무 훈계를 두는 것 같다는 의견들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책에서 구체적으로 방법을 알려줘도 그대로 따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실제로 독자가 책에 실린 방법을 실생활에 적용한다고 해도 저자만큼의 효과를 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난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자세한 운동법이 나와 있는 운동이나 다이어트에 관련된 책을 읽고 따라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대충 느낌이 올 것이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책과 아닌 책도 나름의 장단점은 확실하다. 자기계발서처럼 뜬구름 잡는 소리만 늘어놓은 책들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 대체 무엇인지 따지고 싶을 정도로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다. 하지만 내용의 테두리를 명확하게 정해놓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가 노력만 한다면 사유할 수 있는 범위는 꽤 넓다고 볼 수 있다. 책에 실린 내용과 연결되는 생각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 책으로 인해서 전혀 다른 깨달음을 얻는 것도 꽤 나쁘지 않다.
반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 책들은 실제로 따라 해볼 수 있을 만큼 자세한 예시와 팁들이 나와 있지만, 저자와 독자의 사고방식과 실제 주변 환경이 매칭이 되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내심을 발휘하여 책의 내용을 하나하나 따라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애초에 책을 집어든 것 자체가 보다 더 빠르고 효율적인 방법을 원하는 마음이 내포되어 있다. 본인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생각해도 그것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라면 금세 포기하고 죄없는 저자만 욕하기 바쁜 게 현실이다.
태도가 관건이다
책의 장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책의 내용이 아무리 좋아봤자 완전한 내 것이 아닌 저자의 생각일 뿐이다. 독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책의 가격이나 목차의 구성, 내용의 퀄리티, 교훈이 될 만한 메시지가 들어있냐 없냐가 아니라 읽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다. 가르침은 남이 주는 게 아니다. 스스로 배우려고 할 때 비로소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편하게 앉아서 누군가 내게 지식을 떠먹여주길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어떤 명저를 만나더라도 뭔가 얻어내는 게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배우려는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졸작같은 책을 읽거나 혹은 꼭 책을 읽지 않더라도 일상 속에서 다양한 관찰을 통해 자기 자신만의 사유를 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
애초에 책에 기대려는 그 마음이 문제다. 책을 읽으려는 사람, 뭔가 배우려는 사람이 기대해야 할 건 나와는 세계관이 전혀 다른 사람이 쓴 책에 실려있는 '내용'이 아니다. 진정 기대하거나 실망해야 하는 건 바로 자기 자신의 내면이다. 배우려는 자세와 태도만 훌륭하다면, 쓰레기 같은 책을 읽더라도 자기 마음 안에서 깨우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자기계발 특유의 훈계하는 듯한 말투도 사실 망상에 불과하다. 저자가 아무리 훈계하듯이 책을 쓴 게 사실이라 할지라도, 애초에 훈계 이전에 책은 저자의 생각을 실어 논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위로의 글이든, 따끔한 잔소리의 글이든 내용 이상의 판단을 하지 않을 수만 있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책의 내용이 훈계인지 조언인지는 저자가 의도가 아니라, 읽는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그 색감이 부여된다.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본인에게 해로운 것은 없다. 이건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다. 자기계발서에 실려 있는 내용이 내키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을 쓴 저자나 '자기계발'이라는 장르에 대해 자기만의 잣대로 판단하는 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판단의 누적은 내 인생을 어지럽히는 고정관념을 단단하게 만들 뿐이다.
중요한 건 배우려는 자세다. 내가 도움이 될 만하면 더 읽으면 되고, 내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으면 그냥 덮고 다른 책을 읽으면 된다. 굳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 책 한 권을 읽었다고 해서 그 책과 비슷한 다른 모든 책들에게 억울한 죄명을 씌우는 건 본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지식의 저주, 카테고리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게 중요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