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인생은 그 자체로 축복이다
난 평소에 글 쓰느라 바쁘다. 새벽에 일찍 일어나는 건 독서와 글쓰기를 위해 나만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거라서 당연히 다른 걸 할 틈이 없다.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고 나면 카페로 다시 출근해서 오전에 썼던 글을 다듬다 보면 순식간에 자야 할 시간이 다가와 집으로 돌아간다. 집에 도착해 샤워를 하고 난 후에 30분 정도 아내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나면 금세 자야 할 시간이다. 밤 10시 정도에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에 보통은 늦어도 10시에는 불을 끄고 누워있다.
생활패턴이 이러니 티비 볼 시간이 없다. 우리 집 거실대장 같은 위엄을 자랑하는 거대한 티비는 불쌍하게도 한 달에 1번도 존재감을 드러낼까 말까다. 넷플릭스고 디즈니고 요즘 쏟아지는 영상 플랫폼을 즐길 시간이 내겐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비를 팔진 않았다. 어차피 와이프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공짜티비이기도 했고, 1년에 몇 번 정도는 집에서 편하게 큰 화면으로 보고 싶을 때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땐 집안의 적적한 분위기를 달래고자 항상 티비를 틀어놓고 생활해서 그런지 여전히 왠지 티비가 없으면 허전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런 내가 지난 주말에 직접 내 손으로 리모컨을 잡고 티비를 틀었다. 남들은 비웃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내 일상에서 보기 힘든 기적 같은 일이다. 왠지 그때는 그냥 여유롭게 티비를 틀어서 아무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모컨으로 티비를 틀고 있는 내 모습이 마치 보이지 않는 관찰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날따라 새벽부터 하기로 했던 일을 열심히 잘 해낸 나에게 뭔가 '쉼'을 선물하고 싶었나 보다.
한편으로는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티비 한 번 보는 게 이리도 어렵기만 한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살았던 시절이 아직 내 몸속 싶은 곳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 걸지도 모른다. 나는 하루종일 글 쓰고 먹고 싶은 거 조금 참고 적당히 운동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이 훨씬 좋고 행복해서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생각은 전혀 없다.
예전에 아무 생각 없이 게임하고 티비보고 술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았던 시절을 이제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하는 것마다 그리 즐겁지도 않았다. 게임을 할 때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했지만 항상 현실로 돌아오면 끝없는 공허함이 밀려왔고, 친구들과 술을 먹고 나면 평소에 느끼지 못한 좋은 기분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다음 날이 되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허무함이 밀려왔다. 숙취는 언제나 덤이었다.
내 시간을 잡아먹는 것들의 매력은 밑도 끝도 없이 다시 생각난다는 것이다. 시간을 마구잡이로 잡아먹는 것들이 중독성까지 있으니 인생이 순삭 되는 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것들이 아니었다. 항상 뭔가를 피하고 싶을 때만 내 앞에 드러나는 요물 같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글쓰기는 나무랄 게 없다. 시간을 잡아먹는 건 다른 것들과 비슷하지만 그 끝이 달랐다. 뿌듯한 건 기본이고, 기록으로 남아 나를 비롯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도 끼친다. 물론 누군가는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겠지만 말이다. 중요한 건 나한테는 확실하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재미도 있는 것이 하면 할수록 점점 내공이 쌓이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게 가장 커다란 장점이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새벽부터 할 만큼 하고 나니, 티비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 걸 느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내가 살아갈 인생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창 젊고 팔팔할 때 열심히 살아야 왠지 황혼의 나이로 접어들고 주름이 만개할 때쯤에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인생에 있어서 늦은 때란 없지만, 최대한 젊은 나이에 일찍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고 그것이 시간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이미 그것만으로도 축복받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자신의 길을 찾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줄 수 있는 지혜로운 조력자가 되고 싶다. 언젠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