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에 집착하니 글쓰기가 힘들어졌다

초고에 괜한 에너지 낭비를 하지 말자

by 달보


성장의 지표일까, 단순한 집착일까


생각보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면 항상 어색하다. 어느새 내 삶 속으로 깊게 들어온 글쓰기는 이제 나의 일부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제 글을 쓰지 않은 날은 제대로 산 것 같지 않게 느껴진다. 어느새 한 줄이라도 써내야만 하는 강박관념을 즐기고 있다. 무슨 글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리지만, 일단 한 번 타이핑하기 시작하면 이것이 내 이야기인지 남의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 가는 내용을 정신없이 써낸다.


그렇게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써 내려가는 게 내가 꾸준하게 글을 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글을 쓸 때 나를 방해하는 생각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같은 단어를 남발하든 맞춤법을 틀리든 일단 어떤 내용이라도 써내는 게 나의 강점이었는데, 요즘은 글을 쓰는 와중에도 자꾸 이것저것 고칠 것들이 눈에 들어와 손가락이 멈추게 된다. 순수성을 잃은 것일까.


난 여태껏 초고를 쓰고 나서 며칠 동안 글을 묵힌 다음, 퇴고를 거친 후에 글을 발행하곤 했다. 그렇게 글을 썼던 이유는 일정 시간이 지나야 눈에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퇴고만큼 사람을 지치게 만드는 것도 없지만, 퇴고를 하다 보면 '퇴고를 하지 않고 글을 함부로 발행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퇴고의 중요성을 절실히 깨닫는다. 그리고 퇴고할 때 눈에 들어오는 것들은 신기하게도 초고를 쓸 당시에는 눈에 잘 뜨이지 않았다. 그냥 쓰기에만 바빴다.


하지만 이제는 퇴고할 때 눈에 들어와야 하는 것들이 초고를 쓰면서 몇 줄만 적어도 바로바로 드러난다. 이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잘 모르겠다. 좋게 보면 내가 그만큼 초고를 쓰고 퇴고를 하는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정신없이 초고를 쓰는 와중에도 고쳐야 할 점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고, 나쁘게 보면 그만큼 글을 쓸 때 나를 방해하는 요소가 더 늘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언제부턴가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난 글린이라 마음에 있는 것들을 꺼내는 것에만 집중해도 모자랄 판국에 이젠 내 생각까지 나를 방해한다. 아마 내 글을 읽는 사람들은 나처럼 그렇게 자세하게 문장 구성을 따져가며 읽어 보지도 않을 텐데 괜히 혼자 나대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럽기도 하다. 아무것도 모르고 글을 막 쓸 때가 확실히 마음은 편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남들보다 술술 써 내려가는 건 잘합니다'라고 자랑할 게 하나 정돈 있었는데, 이젠 뭘로 나를 내세워야 하나 싶다. 이게 좋은 건지 아닌지는 시간이 더 지나 봐야 알겠지만, 중요한 건 내가 짧은 시간 동안 많이 변했다는 것이다. 불과 며칠 전에 내가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면, 뜯어고치고 싶은 부분이 한 두 군데가 아닐 정도로 별 게 눈에 다 들어온다. 매의 눈이 생긴 건지, 쓸데없는 고집을 부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딴 건 몰라도 초고만큼은 편하게 쓰고 싶다. 아니 편하게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초고를 쓸 때부터 그렇게 쓰다 막히고, 쓰다 막히고를 반복하다 보면 금세 지칠 게 뻔하다. 글쓰기에 진심인 사람에게 가장 치명적인 일은 글쓰기를 멈추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과 비교하면 별 게 눈에 다 들어올 만큼 보는 스스로 성장했다는 게 뿌듯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들을 세상으로 모셔올 땐 마음을 내려놓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이번 계기를 통해서 또 하나 배워간다.


사소한 것에 휘말려 본질을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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