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버리다

세상을 제대로 경험할 준비를 하는 과정

by 달보

나는 비어있는 공간이고 싶다.


내게 들어오는 사람들이 저마다 자신만의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아예 텅 비어있는 공간이고 싶다. 막상 처음 들어오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무엇부터 해야 할지 당황스럽고 막막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스스로 자신을 깨달아 가고 조금씩 본인만의 느낌을 표현하기 시작하면서 결국 자기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그런 공간이 되고 싶다.


난 그러기 위해서라도 내 안을 비워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존재를 포근하게 품을 수 있기 위해서라도 내려놓을 줄 아는 능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처음 지혜를 얻기 위한 목적은 세상 모든 것들을 내 안에 집어넣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진정한 지혜는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버릴 줄 아는 능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기 위해서, 현재라는 순간을 있는 그대로 느끼기 위해서, 내 앞의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들어주기 위해서는 나를 완전히 비워내야 했다. 처음엔 나를 버린다는 게 두려웠다. 내가 믿어왔던 수많은 것들이 부정당하면서 잘못 살아왔다는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버리는 것은 극단적인 표현일 뿐이었다. 버리는 것은 그저 '내 안'을 청소하는 것뿐이었다.


나를 아무리 버려도 나라는 공간만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게 비워내고 나면 세상 모든 것을 품어볼 수 있는 축복이 내려진다. 결국 나를 버린다는 것은 실제로 내가 버려지는 게 아니라, 내가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받아들이려는 준비를 스스로 하는 것이었다. 그런 상태가 되면 없던 것이 보이고, 모르던 것을 스스로 깨우칠 준비를 하게 되고,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아량을 품게 된다.


난 그런 텅 빈 공간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나를 버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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