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작가와 독자의 합작품이다
책을 꾸준히 읽다 보면 책의 내용을 점점 비판하는 수준까지 올라갑니다. 그렇게 되는 것은 일단 좋은 반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책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고 따르는 게 아니라, 비판하기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본인만의 생각이 드러나고 있다는 증거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독서를 하지 않는 사람들과 구분되는 엄청난 차별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에 필요 이상으로 집착하게 되면 이전에 없던 또 다른 올가미가 자신의 성장을 가둬 버릴 겁니다.
책을 쓴 저자들도 각자 나름의 고유한 색감을 지니고 있는 한 명의 사람입니다. 누구는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가도 있는 반면에, 누구는 강압적으로 여겨질 만큼 독하게 본인의 주장을 밀어 넣는 작가도 있습니다. 둘의 공통점은 자신의 남다른 뜻을 텍스트로써 남들에게 전달한다는 것이고, 둘의 차이점은 단지 그 분위기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책을 읽는 것의 본질은 '내게 맞을지도 아닐지도 모르는 내용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책에 얽혀 있는 다른 요소들이 꼭 사소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굳이 물고 늘어질 만한 것도 아닙니다. 책을 접하게 되면 오로지 거기에 실려 있는 내용이 내게 도움이 되는지 아닌지만 따지고 들면 되는 겁니다. 시간은 한정적이고 우리의 에너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깊게 사유하고 비판하는 것은 독서를 함에 있어서 매우 훌륭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성장을 위한 사유가 아니라 옳고 그름을 따기지만 하는 사유는 아니었는지 되돌아볼 필요성이 있습니다.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애초에 책을 읽는 목적이 어떤 정보를 전달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 생각이 옳다는 증거를 캐내기 위해서 독서를 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내 생각이 옳다는 증거를 굳이 독서를 하면서까지 캐내는 이유는 스스로에 대한 신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신뢰가 부족한 건 아직 본인만의 철학이 어설프게 형성된 상태이거나, 남의 신념들을 '내 것'이라고 믿는 착각에 빠져서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보통 그런 상태로 살아가게 되면 불안과 두려움이 내면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온전한 나만의 생각이 없는 사람은 흔들리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어떤 수단을 통해 불안정한 감정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때문에 쓸데없이 뭔가를 깎아내리면서까지 비판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독서를 하던 도중 정말 인생 최고의 문장을 만났다고 해도 그건 시간이 지나 봐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그때그때 마음의 상태에 따라 눈에 들어오고 내면을 울리는 문장들은 제각각입니다. 오늘 좋았던 문장이 내일은 시시해질 수도 있고, 오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문장을 내일 다시 보면 내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는 명문장일 수도 있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책 속의 내용은 내용으로만 받아들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굳이 작가와 겨루기 할 필요가 없습니다. 작가는 오로지 자신만의 세계를 책에 담은 것뿐입니다. 독자에게 '내 생각이 맞다'라고 밀어붙이기 위해 책을 쓰는 작가는 거의 없습니다. 심지어 실제로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려는 의지를 책에 담았다 할지라도, 그런 기운을 받아들일지 말지의 선택권은 오로지 독자에게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은 해당 내용을 집필한 저자가 만든 것이지만, 그 책이 비로소 완성되는 지점은 한 명의 독자와 만났을 때입니다. 똑같은 내용이 인쇄된 책이라고 해서 모든 책이 같을 거라고 여기는 건 얕은 생각입니다. 읽는 사람에 따라 그 책의 가치는 무한대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책을 쓴 저자는 자신의 생각 하나밖에 알지 못합니다. 의도가 어떻든 간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맞게 뜻을 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책을 읽으면서 느끼고 깨닫게 되는 것들은 저자와 독자의 합작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자와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도 그 시험대에 올려놓을 줄 알아야 진정으로 건전한 비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독서'를 단순히 책상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독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그 이상의 작용들까지는 인지하지 못합니다. 사실 책을 읽는 동안에 들어오는 인상 깊은 내용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저자의 생각과 나의 생각이 만나 이리저리 뒤섞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내 마음까지 닿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을 발견하게 되는 건, 실제로 저자가 글을 잘 써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이 그 내용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해석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의외로 작가들이 온갖 수고를 들여서 써낸 문장들은 그 자체로 빛을 발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글쓰기가 더욱더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서를 하면서 책을 쓴 작가와 가벼운 소통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작가가 고스란히 책에 새겨놓은 메시지를 토대로 자기 자신과의 깊은 소통에 더 집중을 하는 것이 이전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깊은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참된 자세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