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하는 모든 판단은 착각이다
조용하게 생각할 시간을 구하고자 혼자서 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가기 전에 여행 도중에 있을 심심함을 달래고자 도서관에서 무작위로 몇 권의 책도 빌려서 출발했다. 하지만 그렇게 우연찮게 집어든 책이 내 인격을 바꿔놓을 만큼 중요한 책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여행 첫날 점심을 먹은 뒤, 어느 시골마을의 연꽃이 가득한 못 앞에 있는 팔각정에서 그 책을 처음 폈을 때 아래의 문장을 처음 발견했다.
'인간이 하는 모든 판단은 착각이다'
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그 뜻이 무엇인지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서 순간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그동안의 독서가 이 깨달음을 위한 것이었나 싶을 정도로 내겐 엄청 중요하고 뜻깊은 문장이었다. 그 책 속에는 인간이 하는 모든 판단은 착각일 수밖에 없는 저자의 논리가 모두 실려 있었으며, 아무리 생각해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이 하는 판단이 착각이자 망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자체가 애초에 누구의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보고 생각으로써 판단하고 그 판단을 기준으로 평가하고 이미지를 결정짓는다. 나 또한 그런 식으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며 살았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뭔가 주변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는 착각에 빠져, 다른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동시에 무시하기까지 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다녔었다.
하지만 그 책을 읽고 내가 얼마나 오만하고 자만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함부로 판단하는 것을 완벽하게 통제하진 못하지만 예전에 비하면 훨씬 나아졌다. 어떤 상황이나 사람을 마주하면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판단을 하더라도 '내가 판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려고 애쓰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효과가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상황,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함부로 판단하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스스로 옳다'는 쾌감을 느끼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들을 제물로 삼는 격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죄가 없다. 그런 원리와 논리를 모르고 그렇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인간은 생각보다 똑똑하지 않다. 그저 몸에 밴 습관대로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 본인이 하는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크게 의심하지 않는다. 굳이 의심할 필요도 없고, 살아가는 데 별 지장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일어난다.
살다 보면 다양한 상황과 문제들을 마주하게 되는데, 자기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는데 적잖이 애를 먹게 되어 있다. 문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모르는 데서 그치면 차라리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의 문제를 남 탓, 상황 탓으로 돌리게 된다. 그렇게 악순환은 시작된다.
마음공부에 대한 책을 접하고 나서는 위와 같은 지식들을 항상 머금고 살아간다. 그러다 보니 내 마음도 항상 경계를 하지만, 예전의 나와 같이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도 특히 경계를 한다. 이제 와서 남들을 함부로 판단하는 사람들을 보면 확실히 '내가 옳다'라는 기운을 풍긴다. 상대방에게 솔직하게 물어볼 생각은 않고, 일단 자기만의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미리 가려놓은 다음 대화를 시도한다.
그런 식으로 관계를 형성하고 대화를 이어 나가면, '난 항상 옳다'라는 관념만 강해질 뿐이다. 그래가지고서는 어제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가 어렵다. 현재의 상태를 극복해야만 더 크게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라는 것을 들이미는 사람들의 특징은 실제로 자기 자신을 뼛속깊이 인정하지 않는 마음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진심으로 인정하고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굳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나를 어필할 필요가 있을까? 인간은 이유 없이 행동하지 않는다. 말을 꺼내는 것도, 침묵하는 것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해도 말이다.
어엿한 성인이 되었다면, 인간관계가 삶의 질을 가를 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인간관계가 귀한 줄 알고, 나를 도와주는 귀인을 놓치고 싶지 않을수록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원래 사람은 나보다 남의 문제점을 더 정확하게 알아본다. 내가 아닌 남은 애쓰지 않아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판단하려는 마음이 든다면, 상대방을 통하여 나를 판단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은 어떨까. 생각해 보면 남을 판단하는 건 남는 게 없다. 정말 예리하고 정확하게 판단하더라도 오히려 상처로 남게 될 확률이 높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어떤 판단이 들더라도 그저 상대방이 도움을 요청하기 전까지는 그냥 침묵하는 것이 가장 좋은 처세가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내 눈에 남의 어떤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그에게서 '나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에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땐 하나의 기회로 여기고 나를 돌아보라는 지표로써 여기게 된다면 언제 어디서나 자기 자신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는 발판이 열리게 된다. 그런 사람에게는 굳이 멘토나 책 같은 건 필요 없을 것이다. 모든 가르침은 자기 자신을 돌아보는 데 그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 그리고 어떤 사람을 판단하기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다. 그 점이 나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판단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누굴 만나도 비슷한 사람을 만날 것이고 어떤 상황을 겪더라도 실제 일어난 일보다 더 심각하게 상황을 받아들여 스트레스만 높아질 것이다.
일부러 나를 괴롭히려고 살아가는 게 아니라면, 판단하는 마음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마음을 경계할 줄 알고 적절히 활용하기 시작한다면, 보다 더 나은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강하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