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을 위한 배려는 결국 나를 위한 배려다
배려의 기본 속성은 오지랖이다. 배려가 성립이 되려면 상대방의 반응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아무리 취지가 상대방을 위한 배려라고 할지라도 상대방의 입장을 내 입맛에 맞게 해석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행히도 상대방이 나의 행동에 대해서 감사함을 느끼거나, 기뻐한다면 그나마 오지랖은 배려의 옷을 입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배려는 오지랖일 수밖에 없다. 알 수 없는 상대방의 입장을 내 생각대로 고려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방을 위하는 행동이라고 해도 그 마음의 끝에는 결국 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남을 배려함으로써 좋은 이미지를 형성하고 싶을 수도 있고, 내가 신경 쓰이는 부분을 내 식대로 해결하려 하는 방식일 수도 있다.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진실이다.
배려는 어쨌거나 남의 입장을 내 기준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남을 판단하는 건 언제나 잠정적 오류를 내포하고 있다. 사람이란 동물은 자기 자신의 마음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상대방을 위한 선한 마음을 녹여낸 행동이라 할지라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오히려 괜한 부담감만 쥐어주게 될 수도 있다.
배려는 평균 이상의 점수를 따려는 처절한 행동일 수도 있다. 상대방을 넘겨짚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직접 물어보는 것이다. 비록 '내가 너의 마음을 미리 헤아리지 못했다'라는 이미지를 심어줄 수도 있지만, 최소한 오해를 살 일은 생기지 않는다. 후에 어떤 상황으로 빚어지든 결과에 대한 책임은 상대방에게 넘어간 것이다. 난 질문을 했고, 그는 대답을 했으니까.
남에게 질문하지도 않고, 배려부터 한다는 건 어찌 보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믿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다. 그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내 선에서 해결하려는 심리가 작용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특정 질문을 했을 때 우려되는 상황이 두려운 나머지 배려로 그 사태를 사전에 방지하려는 건지도 모른다.
인간이 하는 모든 행동은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다. 의도가 어쨌든 남을 위한 배려도 '나를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못한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는 건 그리 쉬운 게 아니다. 정상적인 인간일수록 모든 행동의 끝은 본인에게 가 있을 수밖에 없다. 본인은 진심으로 남을 위한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어쩌면 마음 안에서 혼자 만들어 내는 시나리오에 불과한 것일 수도 있다.
불편해 보이면 물어보라.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다면 질문해서 답을 구하라. 상황이 애매하다면 대화를 시도하라. 흐르는 시냇물도 바위에 부딪혀야 물소리가 나는 법이다. 당사자와의 교류를 거치지 않는 모든 생각들은 착각이고, 망상이며, 오지랖이다. 배려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느껴지는 긍정적인 기운은 하나의 고정관념일 뿐이다.
확실하게 알지도 못하는 남의 마음을 알아내려고 애쓰지 말고, 알아냈다고 생각도 하지 말자. 결과에 대한 망상은 에너지 낭비일 뿐이다. 배려하고 싶은 마음은 알겠으나, 직접 물어보지 않고서 하는 행동은 결국엔 오지랖의 범주를 피해 갈 수 없다. 어쩌다 가끔 운이 맞아떨어지면 배려의 꽃이 피어나는 것뿐이다. 내가 나를 위한 행동을 남을 위한답시고 포장을 하는 것만큼, 상대방도 똑같은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자.
남을 위해 배려를 하는 것도 좋지만 적정선을 지킬 필요가 있다. 세상에서 가장 배려해야 할 존재는 다름 아닌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를 챙기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면 상대방은 자연스럽게 배려를 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고 놓아주자. 너무 많은 것을 신경 쓰며 살아가기엔 이미 세상은 그 자체로 완벽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