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한 삶의 태도
내가 독서를 통해 혜안을 얻었을 때의 느낌은 이루 말로 표현하기 힘들 만큼 감격적이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수평적으로밖에 돌아볼 수 없었던 세상이, 하늘처럼 높은 곳에서 아주 넓은 세상이 한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이해가 되는 것 같았고, 어떤 것을 마주하더라도 받아들이지 못할 일 따위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뭔가를 깨달았다고 해서 그만한 지혜가 내 몸에 스며드는 것은 아니었다. 깨달음은 그저 작은 도약일 뿐이었다. 한때는 '알아냈다'는 기쁨에 심취한 나머지 주변 사람들에게 호소하다시피 전파를 하고 다닌 적이 있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하는 말들은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겐 그저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혹은 내가 메시지를 전하는 능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만 해도 내면의 뿌리 깊은 체계가 완전히 뒤집힐 수 있었던 것은 수십 년의 세월의 흔적과 더불어 수많은 책을 읽어왔던 덕분에 겨우 일어난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단지 내가 깨달았다는 이유로 그들도 변화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조금이라도 품었던 나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존재였다. 난 그저 나의 깨달음을 전파함으로써 남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키려 할 뿐이었다. 부끄럽지만 의도 자체가 불순했다. 어찌 보면 그 때문에 스스로 고독의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지금은 오히려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만약 내 말에 모두 동조를 하고 쉽게 인정했다면 나의 공부는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 '그 이상'의 공부는 하지 않고 자만의 늪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경험했던 세상의 모든 마찰은 인내와 겸손을 가르치려는 우주의 위대한 수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저마다의 가르침을 머금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난 지금도 여전히 깨달음에 대한 정합성을 탐구하는 과정을 살고 있다. 아마 이런 과정은 평생 끝이 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알던 모든 것이 틀렸을 수도, 내가 알아낸 모든 것이 맞을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 파괴는 필수적이다. 아는 게 많아질수록 그 '앎'에 균열을 일으키는 '또 다른 생각'도 받아들일 줄 알아야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뒤늦게 알게 된 사실이 한 가지 있다면, 참 고맙게도 세상이 내게 필요한 모든 균열을 알아서 일으켜주고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이 나를 괴롭히려고 작정한 듯 던져왔던 그 수많은 일들은, 결국 내가 원하고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모두 담겨 있는 나만을 위한 선물이었다. 내가 단단해질 수 있었던 건 결코 나 혼자만의 능력으로 일궈낸 것이 아니었다.
세상은 나였고, 내가 곧 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