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쓰지 않는 것이다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안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글을 많이 쓰지 않는 것'이다. 보통 사람들은 글쓰기가 생각만큼 되지 않을 때면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거나 유튜브, 글쓰기 강의, 글쓰기 모임 등을 찾게 된다. 누가 보면 '글쓰기를 위한 공부'를 하는 거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그 속엔 '글쓰기를 미루고 싶은 마음'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다. 되지도 않는 글쓰기를 붙잡고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듣고 공부하는 것이 차라리 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쓰기를 인생에 들이려는 사람에게 그런 시련은 극복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걸 넘어서기만 한다면 미래에 낭비할 시간과 에너지를 대폭 아낄 수 있다. 글쓰기에 관한 습관이나 마인드셋이 제대로 자리 잡히지 않은 사람에게 글쓰기는 당연히 힘들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지 말고, 화면을 돌리지 말고 꿋꿋하게 글을 써야만 한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고충을 덜어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생각과 마음가짐을 고쳐 먹는 것이다.
시중에 나와 있는 글쓰기책, 유튜브에 널려 있는 글쓰기 관련 영상, 은근히 비싼 글쓰기 관련 강의 또는 과외 등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없다. 그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약간의 지식뿐이다. 차라리 놀고먹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공부를 하는 게 나아 보이긴 하지만 차라리 그 시간에 메모장 열어서 한 자라도 더 쓰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일단 쓰기 시작하면 멈추는 게 힘들 정도로 써 나가는 게 글쓰기의 매력이지만, 이렇게 되기가 힘든 사람이 있다면 그건 생각을 이상하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다. 글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 중에 한글을 모르는 사람, 펜으로 글을 적지 못하거나 컴퓨터가 없어서 타이핑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글을 바로 쓰지 못하는 가장 큰 걸림돌은 '글감이 없다는 생각'과 '잘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다.
일단 글감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다. 이 부분을 부정하는 사람이 있다면 글감에 대하여 단단한 착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확률이 높다. '글감이 없다는 생각'자체부터 이미 하나의 글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글쓰기는 없던 것을 만들어내는 창작활동이라기보다는 내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는 단순한 놀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 떠돌아다니는 수많은 잡생각을 그대로 옮기는 것도 한 편의 글이 된다. 써지지 않는다고 해서 괜히 딴짓을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쓰는 게 훨씬 도움이 된다. 단어 하나라도 일단 쓰기 시작하면 어떤 글이 내 앞에 마법처럼 펼쳐질지 써보지 않고서는 절대 모른다.
만약 글감이 없다는 사람의 말이 진실이라면 마음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머리와 마음을 완벽하게 비우지 못한다. '글감이 없어서 못 쓴다'는 그 생각 하나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 자기 자신을 알아차리고 뭐라도 쓰기 위해 마음먹고 노력한다면 글을 잘 쓰진 못해도 '못 쓰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은근히 많은 사람들이 아직 글 쓰는 습관도 없는데 처음부터 글을 잘 쓰려고만 한다. 심지어 잘 쓴 글의 기준도 잡히지 않은 채로 말이다. 그건 그냥 잘 쓰고 싶은 욕심만 부리는 꼴이 된다. 하지만 그런 욕심이 글쓰기를 망설이게 한다. 쓰기도 전에 기준만 높은 나머지 글을 다 쓰고 나면 본인의 글에 본인이 실망할까 봐 쓰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잘 쓰려는 욕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글을 쓰기도 전부터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지레 겁먹는 바람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거나 아예 다른 길로 새 버리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런 문제들은 글을 쓰는 운명 앞에 놓인 사람이 뚫어내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글을 써본 적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글쓰기를 해보겠다며 쉽지 않게 글을 쓸 수 있었으면 작가라는 직업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자신과 끊임없이 대립하면서 어떡해서든 한 자라도 더 써내는 사람만이 결국 마지막까지 쓰는 사람이 되고 작가가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글감도 잘 떠오르지 않고 생각만큼 글이 잘 써지지 않을 때는 본인을 자책할 게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오히려 이런 고충들은 좋은 반응이다. 진짜 글쓰기를 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난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망설임 없이 많은 글을 쓰는 편이었다. 지금처럼 온라인에 글을 발행하기 전에도 연애편지를 많이 썼었다. 연애편지를 쓸 때는 상대방을 떠올리며 떠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옮기는 게 전부였기 때문에 크게 힘이 들지 않았다. 그렇게 편지를 쓰다 보니 생각보다 내 안에서 다양한 내용이 나온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대방에 대한 감정을 떠올린다고 해서 무슨 장문의 텍스트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펼쳐지는 건 아니었다. 단지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작은 덩어리 같은 것들이 둥둥 떠다닐 뿐이었다. 하지만 일단 쓰기 시작하면 내가 미처 떠올리지 못한 표현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이처럼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어렵더라도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본인만의 감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나만의 감성이 녹아있는 글은 글쓰기 도사가 와도 흉내 내지 못할 것들이다. 그래서 일단 많이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나 감성 같은 건 글쓰기 강의 천 번을 들어도 안에서 꺼낼 수 없지만, 자기 자신과 조용하게 마주하고 천천히 한 단어 한 문장씩 그렇게 써 내려가다 보면 알아서 눈앞에 드러나게 되어 있다.
나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글을 쓰기 위해서 최대한 많은 글을 써야 한다는 건 매번 강조해도 모자라다. 진짜 많이 쓰는 것만큼 능사는 없다. 좋은 글을 쓰는 데 집착하면 하루에 한 글자도 적기 어렵지만, 그냥 편하게 내려놓고 아무 글이나 낙서처럼 쓰려고 하는 사람은 하루종일도 쓸 수 있을 만한 풍부한 글감이 머릿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게 꾸준하게 매일 글을 쓰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두터워진다. 그리고 글을 쓰고 나면 시원하게 털어버리는 게 좋다. 괜히 써놓고 나서 내 글이 잘 썼니, 사람들의 반응이 어땠니 신경 쓰는 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를 이겨내고 글을 써보자. 글을 쓰기 시작하면 막상 나를 가로막고 있던 게 나 자신이 아니라, 정체 모를 두려움과 불안감에서 오는 수많은 생각들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언제나 나를 방해한다고 생각했던 또 다른 나가 실은 나를 도와주기 위해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런 순간을 경험한 사람은 인생이 좋은 방향으로 기울게 될 확률이 높다.
글쓰기는 나를 찾아가는 위대한 여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