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산으로 가는 친구관계
확실히 난 최근에 많이 변했다. 1년 동안 새벽에 일어나서 독서와 글쓰기를 했다. 살도 10kg 빠졌다. 아내와 신혼을 즐기면서 전보다 더욱더 깊은 관계로 발전해 나가는 중이다. 삶이 이렇게 흘러가는데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변화를 이루어 내려면 포기해야 하는 것들이 많다. 뭐든지 공짜는 없었다. 새벽에 일어나려면 시간을 벌어야 했고 시간을 벌기 위해선 여러가지를 포기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친구들과의 만남을 절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말이 그렇지, 원래부터 친구들 만날 일은 별로 없었다. 이직하면서 고향을 뜬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고 다른 친구들도 가정이 생기면서부터는 서로들 바빴기 때문에 얼굴 한 번 보기가 힘들었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평소 알고 지내던 거의 모든 사람들과의 만남을 갖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는 시간을 쪼개가며 글을 쓰고 있다. 글 쓸 시간도 빠듯한데 친구들과 술 마시며 웃고 떠들 시간은 내기 힘들었다.
그러다 우연찮게도 친구들이 나에 대해 '많이 변했다', '우리를 일부러 밀어내는 것 같다'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난 처음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내가 변한 건 맞지만, 그들에게 대체 무슨 피해를 준 거지?'
아무것도 모르던 애송이 시절에 어떡해서든 놀고 싶은 마음에 주말만 되면 술 먹자며 친구들을 불러 모으던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당연히 하늘과 땅만큼 그 간극이 크다. 나뿐만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생각도 몸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근데 그들은 대체 왜 나의 변화만 못마땅해하는 걸까. 대한민국 사람들은 남 잘 되는 꼴을 지켜보지 못한다는데 그 피가 친구들에게도 흐르고 있어서 단순히 시기질투를 하는 걸까.
내가 변했다고 느낄 법한 이유는 나 혼자 항상 바쁘기 때문에 친구들 만나는 횟수가 전보다 줄어든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나에 대한 판단은 '바빠 보이네'정도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많이 달랐다. 알고 보니 글쓰기는 나만 하는 게 아니었다. 친구들도 머릿속으로 나름의 소설들을 써가고 있었던 것이다.
나에 대한 불만을 품고 있는 것치고는, 나와 그렇게 친했다고 생각했던 관계치고는 내게 단 한 번의 언급도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다. 요즘 생각이 어떻냐고 물어본 놈도 없고, 긍정적으로 생각할 줄 아는 놈도 없었다. 그중에 그나마 대화가 통하는 소수의 친구 몇 명만이 나와 약간의 소통이 오갈 뿐이었다.
내가 변했다고 한다면 인정한다. 몸도 마음도 확실히 변한 게 맞으니까. 하지만 잘 살아보기 위해서 열심히 살아가는 것뿐이다.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삶의 어떤 부분이 대체 자신들을 밀어낸다고 여겨지는 것인지 까놓고 물어보고 싶다. 차마 그렇게 물어보지 못하겠는 이유는 현재 우리들의 관계가 제대로 된 대화 한 번 나눈 적 없이 아슬아슬해졌기 때문이다.
현재 친구들과의 관계는 혼수상태에 이르렀다. 난 그저 열심히 살았던 죄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또 그들의 생각을 들어보면 내가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고 본다. 나도 불완전한 한 명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이 있든 없든 간에 '내가 자신들을 밀어낸다'는 생각을 함부로 한 것에 대해서는 그들이 치명적인 판단오류를 범한 거라는 사실은 명백하다. 덕분에 그들에게 큰 실망을 했다.
과연 이런 상황이 한 번 뿐일까?
가벼운 질문 하나 건네지 못하는 건 애초에 친했던 관계가 아니었던 걸까. 나도 잘 모르겠다. 머리 아파서 깊게 생각하기도 싫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역시 인간의 모든 문제는 '판단'에서 일어난다는 걸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다만 그 사실을 내가 가장 사랑하는 친구들과의 관계를 통해 깨달았다는 게 유독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