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식이 달라지면 행동도 변한다
최근에 살이 10kg 가까이 빠졌다. 아침마다 수영은 다니고 있지만 운동으로 뺀 살은 아니다. 다이어트는 식단조절이 90% 이상의 영향을 차지한다고 생각한다. 살 빼려고 할 때마다 실패했던 이유는 모두 식단조절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런 내가 어느새 옷 입는 사이즈가 달라질 만큼 살이 빠졌다. 특정 마법을 부린 게 아니다. 비결은 역시 식단조절에 있었다. 다만 무작정 양을 줄이는 식단조절이 아니라 포만감과 관련된 생각과 감각에 집중했다. 그랬더니 효과를 보게 된 것이다.
딱히 특별한 건 하지 않았다. 먹고 싶은 욕구와 싸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의지만으로 나 자신과 싸우는 게 승산이 거의 없다는 건 이전에 실패했던 수많은 다이어트를 통해서 이미 충분히 깨달았다. 난 배고픔과 배부름을 알아차리는 것에만 집중했다. 배고픔과 배부름이 어떻게 찾아와서 얼마동안 머물다가 언제쯤 사라지는지 최대한 신경을 곤두세워서 느끼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식단조절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었다.
결국 생각 하나 바꿨을 뿐인데
살이 빠진 것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배고프면 뭘 먹게 된다. 난 끼니를 때울 때 포만감이 가득 차도록 먹는 습관이 있었다. 배가 가득 찬 느낌이 들어야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밥을 한 번 먹기 시작하면 오직 완벽한 배부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황소처럼 식사를 하곤 했다. 언제나 배고픔 때문에 숟가락을 들게 되지만 입에 뭘 넣기만 하면 배고픔 따위는 사라지거나 말거나였다.
난 이 배고픔을 다시 한번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 평소와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식사를 했다. 일단 영상을 틀지 않고 밥만 먹었다. 그리고 음식맛을 최대한 느끼기 위해 먹는 행위에 집중했다. 할 수 있는 최대한 천천히 식사를 했다. 동시에 허기가 언제쯤 사라지는 지도 가만히 살펴봤다. 쉽게 말하면 아무런 영상도 틀지 않고 몸 상태를 체크해 가며 밥을 천천히 먹은 것이었다.
의외로 음식을 먹게 만드는 배고픔은 단 몇 숟갈만 떠먹어도 금방 사라졌다. 밥과 여러 가지 반찬을 차려놓은 게 섭섭할 정도로 배고픔은 온데간데 없이 도망가고 없었다. 사실 배고픔은 배부름으로 물리치는 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하지만 알고 보니 배고픔은 호랑이가 아니라 새끼고양이었다.
밥을 먹는 도중에 배고픔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걸 직시하니 숟가락을 내려놔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게 있어서는 상당히 생소한 일이었다. 난 90% 이상의 포만감을 느끼거나 눈앞에 놓여 있는 음식을 다 먹어 치워야 비로소 숟가락을 내려놨었기 때문이다.
'이 정도만 먹어도 허기가 사라지는데 대체 난 평소에 얼마나 음식을 더 먹은 걸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살은 음식들이 찌운 게 아니었다. 둔한 감각과 무관심이 살이 찔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이었다. 평소에 느꼈던 '배부름'은 기분 좋은 반응이 아니었다. '빌어먹을 음식 좀 그만 넣으라'는 몸의 신호였던 것이다.
아마 이번에 이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식단조절이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이젠 밥을 먹을 때 전처럼 배부름만을 향해 돌진하지 않는다. 배고픔이 언제 사라지는지 알아차리기 위하여 최대한 식사활동을 온전히 느끼려고 노력한다. 마치 식사명상을 하듯이 말이다. 덕분에 요즘 김치만 있어도 밥을 아주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배고픔에 대한 해석을 달리하니 식사량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먹는 양이 줄어든 만큼 허기는 금세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예상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 다시 배고픔을 느끼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완전히 배부르게 먹을 때나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심지어 점심을 먹고 나서 저녁 먹을 시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허기가 느껴지지 않은 적도 많았다.
그래서 굳이 허기가 느껴지지 않을 때는 밥을 먹지 않는 시도를 해봤다. 시간 됐다고 무작정 음식을 입에 밀어 넣지 않았다. 끼니를 챙겨 먹을 시간이 다가오면 일단 몸 상태부터 체크했다. 그때 굳이 안 먹어도 될 것 같으면 한 끼를 스킵했다. 1일 1식 다이어트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배고픔과 배부름의 상태를 가만히 알아차리다 보니 의도치 않게 하루에 한 끼를 먹게 되는 날도 종종 생겼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다. 단지 배고플 땐 먹고 배고프지 않을 때는 먹지 않았을 뿐이었다. 평소처럼 머릿속으로 '6시가 되면 저녁을 먹어야겠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식사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기대가 만들어 낸 상상은 굳이 배고프지 않아도 밥을 먹게 되는 현실을 창조해 낸다. 그래서 미리 생각하지 않고 그저 내 몸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규칙적인 식사가 좋다고는 하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그 규칙은 오히려 식사량의 불균형을 초래했다. 그래서 누가 만든 지도 모르는 규칙 따위는 무시하고 내 몸 상태에만 온전히 집중했다. 배고픔을 알아차리니 적당히 먹을 수 있게 되고 배부름을 알아차리니 먹을 때와 아닐 때를 구분하여 무작정 시간이 다가왔다고 음식을 입에 밀어 넣지 않게 되었다.
그게 전부였다.
배고픔과 배부름을 알아차리다 보니 내가 평소에 먹던 식사량은 대부분 한도초과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덕분에 먹는 양을 조절하고 먹을 때와 아닐 때를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딱히 목표 체중 같은 건 세우지 않았다. 몸 상태를 자세히 관찰하고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선택을 하는 게 다였다. 매일 그렇게 생활하니 살이 빠지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처럼 따라왔다.
몸이 주는 신호를 외면하지 않고 최대한 받아들이려고 노력했다.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은 무시했다. 생각보다 생각들은 믿을 게 되지 못했다. 최대한 감각에만 집중했다. 몸이 몸을 가장 잘 알고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번에 체험한 다이어트는 내 몸과 최대한 조화롭게 어울리고자 노력했던 결과가 고스란히 드러난 것뿐이라고 생각한다.
살 빼고 싶으면 덜 먹는 방법밖에 없다.
단지 '어떻게' 덜 먹는지가 나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