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내려놓으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
주변을 돌아보면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글쓰기는커녕 책 읽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글쓰기와 관련된 이야기를 주고받을 사람이 없는 게 사실이다. 다만 그런 내게 긴장감을 주는 존재가 한 명 있다. 바로 나의 아내다. 그녀는 글쓰기를 나처럼 하진 않지만, 언어 능력과 기본적인 통찰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내가 평소에 놓치는 부분을 집어내는 재주가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전에 쓴 글들을 훑어보면 부끄러울 정도로 심각한 문제가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으뜸은 문장을 길게 썼던 것이다. 사실 글쓰기를 처음 하기 시작할 때는 주제에 어울리지 않는 자만심에 빠져 있었다. 블로그에 독후감이나 에세이를 쓰면 사람들의 반응이 항상 좋았기 때문이다. 글 자체를 칭찬해 주신 분들이 많아서 어깨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곤 했다.
그렇게 먼 산으로 가던 나를 붙잡아준 건 바로 아내의 지적이었다. 그녀는 내 글을 읽어보더니 "문장이 쓸데없이 너무 길다"라고 말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런 말은 누구에게도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내가 문장을 엿가락처럼 늘어뜨린다는 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아니라 아내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는 게 왠지 부끄러웠다.
내심 받아들이기 싫었지만 아내의 말은 가슴 깊은 곳에 제대로 박혔다. 그날 이후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읽으면 '문장을 간결하게 써라'와 같은 내용들만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을 버리지 못했던 나는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들춰보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다시 읽어볼 용기를 내지 못한 것이다. 사실 두려웠다. 아내가 지적한 부분을 내 눈으로 직접 발견할까 봐.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굳이 전에 썼던 글들을 다시 읽어볼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여느 때처럼 글을 쓰고 있는데 문장이 길어지는 게 드디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난 문장을 이쯤에서 끝낼 법도 한데 마치 길게 써야만 하는 의무가 있는 사람처럼, 마침표를 찍을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글을 쓰고 있었다. 결국 보다못해 쓰던 글을 임시저장한 뒤 내가 그동안 써왔던 글들을 무작위로 읽어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나는 헛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대체 왜 이렇게 글을 써온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내가 썼던 글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부끄러웠다. 한편으로는 시원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때 한 가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글쓰기를 시작했던 초창기에 업로드한 글을 읽어보면 문장들이 하나같이 정말 쓰잘데기 없이 길다는 게 그제서야 눈에 들어왔다. 문장인지 문단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말이다.
문장이 긴 것도 문제였지만, 더 심각한 부분은 문장의 시작과 끝의 맥락이 어긋나 있다는 것이었다. 대체 이런 글을 읽어주고 칭찬한 사람들은 천사였던 걸까, 아니면 사람들은 생각 이상으로 글을 대충 읽는 걸까. 하긴 생각해 보면 나도 남의 글을 그리 자세하게 읽어보진 않는다. 남의 글을 읽을 때면 글에 담긴 핵심 메시지만 얻어내려 할 뿐, 너무 이상한 글만 아니면 글의 완성도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렇게 아내 덕분에 난 나의 커다란 결점을 발견할 수 있었고, 고칠 수 있었다. 더 좋은 건 피드백을 받아들이는 자세도 교정되었다는 것이다. 난 글쓰기에 대해 남의 조언을 진지하게 들을 자세가 되어 있지 않았었다. 나도 모르게 아내가 작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녀의 조언을 흘려 들었었다. 부끄럽지만 그 사실을 인정한다. 여하튼 그때 일은 내가 아직 한참 멀었다는 가르침을 주는 신의 계시 같았다.
본 글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마음을 열고 집착을 내려놓으면, 모든 일이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눈에 밟히는 게 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것도 이유 없이 마음에 들어오진 않는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기 자신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하기만 한다면 말이다.
말처럼 그리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건 알고 있다. 나도 내가 사랑하는 아내에게 이런저런 지적을 받는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받아들이기가 꽤 힘들었다. 가까운 사람이 하는 말이라서 그런지 문제를 직시하기보다는 쓸데없는 잡생각에 사로잡혀 엉뚱한 마음만 자꾸 일어났다. 아마 이어령 선생님 같은 분이 내게 그런 조언을 건넸더라면 감사한 마음에 절이라도 했을 것이다.
마음을 내려놓고 겸허히 받아들인다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다. 그렇다 할 근거도 없이 그저 부정하고 싶기만 한 욕망을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나를 향해 날아오는 게 화살인지 선물인지 알아볼 수 있는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깨달음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