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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글쓰기모임을 만들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글쓰기에 닿게 되기를

by 달보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글쓰기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글쓰기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쓰는 것'의 위대한 가치를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그날을 마냥 기다리는 것보단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고 싶었다. 그렇게 생각해 낸 것이 바로 글쓰기모임이었다. 내 글을 쓰는 데만 해도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는 게 사실이지만, 사람들과 함께 글을 쓰는 경험은 그 자체로 긍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전에 없던 새로운 인연을 만나 가치를 공유하는 과정에서 상상 이상의 글감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글쓰기모임을 만들었다. 홍보는 적극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적당히 모이면 소소하게 모여서 글을 써 볼 생각이었다. 처음 몇 달간은 예상대로 모임방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가뜩이나 모임 중에서도 독서모임만큼 유니크한 게 없는데 글쓰기모임은 유니크 중에서도 유니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바라지 않았다. 독서와 글쓰기에 진심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필요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선 여유를 가지고 기다릴 필요가 있었다. 그전까지는 하던 대로 글을 쓰면 될 일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이 점점 들어오기 시작했다. 5,6명 정도가 있긴 했지만 그마저도 유령멤버가 절반 이상이었던 모임방에 2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들어찼다. 채팅이 잦은 것도 아니었는데 사람들이 줄줄이 입장한 것도 신기했다. 여하튼 그렇게 사람들은 모였고 모임을 개설한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글쓰기 모임을 가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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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보는 사람들이 서로 글쓰기를 중심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때 만난 분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유형이 많았다. 간단한 자기소개를 통해서도 흔치 않은 경험의 소유자들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자기소개와 왜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지 정도로 담소를 나누고 우린 바로 15분 글쓰기를 시작했다. 2명은 노트북으로, 2명은 아이패드로, 1명은 스마트폰으로 글을 썼다. 타이머를 맞춰놓고 시간이 다 될 때까지 서로들 글쓰기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매일 글을 쓰고 있는 나였지만 확실히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하는 글쓰기는 기분이 색다르고 적당한 긴장감이 몸에서 흐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약 1분 정도 남았을 때쯤 다들 쓰던 글을 마무리하는 분위기였다. 15분 동안 글을 다 써낸 우리는 10분 정도 쉬는 시간을 가졌다. 그때 물을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왜들 그렇게 다들 목이 말랐을까. 주문했던 음료는 이미 전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나도 주문했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다 마시고 없었다. 그런 상황은 마치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심정을 대변해 주는 것만 같았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우리는 5분 정도 퇴고하는 시간을 가졌다. 퇴고의 퇴자도 모르던 혼자 묵묵히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퇴고의 중요성을 사람들에게 은근히 전파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과정을 살포시 집어넣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묵묵히 쓴 글을 바라보거나, 살짝 글을 다듬거나, 막판 스퍼트를 내는 것처럼 폭풍수정을 하는 등 다양한 모습이 보였다.


퇴고까지 끝난 후 나부터 바로 쓴 글에 대한 낭독을 시작하였다. 맨날 나 혼자 읽어보던 글을 사람들에게 읽어주는 경험은 꽤나 신선했다. 생각보다 말을 더듬기도 하고, 읽는 와중에도 수정하고 싶은 부분이 눈에 들어와 거슬리는 부분도 많았다. 읽는 동안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그렇게 나를 시작으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에게 15분 동안 써낸 글을 살짝 부끄러운 내색을 풍기면서도 거리낌 없이 공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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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내가 쓴 글에만 빠져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짧은 시간에 써낸 글을 직접 들어보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개성이 정말 뚜렷했다.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내가 조금 특이해 보였는데 거기 모인 사람들은 전부가 다 보통사람들 같진 않아 보였다. 색이 달라도 정말 달랐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글의 정석을 보여주는 듯한 사람도 있었고, 동화책을 읽듯 포근한 느낌이 드는 글도 있었고, 의식성장에 대한 당찬 기운이 느껴지는 글도 있었고, 대충 쓴 듯 하지만 알 수 없는 깊이가 느껴지는 글도 있었다.


난 욕심이 얼마나 많은지, 내겐 없고 그들에게만 있는 매력을 조금씩 뺏어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나도 그들에게는 없는 매력이 있을 터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와 다른 그들을 더 존중하는 것뿐이었다. 여하튼 생각지도 못한 질투심이 마음에서 일어나는 게 의외였다.


사람들이 각자의 글을 낭독하는 동안에 여러 가지 감정이 스쳐갔지만 그중에서도 글쓰기 모임을 잘 만들었다는 뿌듯함이 가슴 깊이 차오르는 것을 가장 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나 혼자만 알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글쓰기를 글쓰기 활동을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하고 싶은 순수한 마음에 만들게 된 모임이지만, 결국 가장 큰 혜택을 받는 건 바로 나였다.


그렇게 내가 만든 첫 글쓰기 모임은 다행히 계획했던 2시간이 딱 채워질 때쯤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그때 만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지만, 낯선 사람들이 즉석에서 쓴 글을 직접 들어보는 건 상당히 뜻깊은 경험이었다. 우린 서로 아쉬움을 토로한 채 다음 모임을 기약하며 웃는 얼굴로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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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했던 하루의 마무리를 하고 있는 와중에 뜻밖에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건 바로 일정이 맞지 않아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분이 따로 혼자서 쓴 글을 채팅방에 올려 공유한 것이었다. 안 그래도 뿌듯했던 마음은 더 부풀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글쓰기모임을 만들게 된 취지가 사람들이 그냥 보내버릴 법한 하루에 모임이 주는 영향력으로 인해 글쓰기라는 점 하나를 찍게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점은 오프라인 모임을 참여한 사람들만 찍게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이미 이렇게 사람들에게 소소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좋았다. '언젠간 하게 되겠지'라는 마음을 뒤로하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덕분에 이런 좋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좋은 영향을 나만 받는 게 아니라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진다는 점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우연히 스치듯 지나가는 생각을 부여잡고 만들게 된 글쓰기 모임 치고는 상당히 큰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앞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글쓰기를 전하게 되는 훌륭한 전달자가 되는 미래의 내 모습을 선명하게 상상하기 시작했다.


부디 나의 바람이 현실로 이루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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