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
연애 횟수에 평균적인 수치가 어딨겠냐만은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난 연애를 많이 한 축이었다. 20살 이후로 공백기간이 거의 없었다. 얌전하고 무난한 성격에 도를 넘는 행동을 잘하지 않아서 그런지 사람은 항상 곁에 있었다. 여복도 약간 있는 편이었다. 고백했다가 거절당한 적도 여럿 있었지만 마음을 전했을 때 관계가 발전한 적이 더 많았다.
그런 내 눈에는 멀쩡한데 소개팅만 나가면 잘 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개팅 상대가 본인의 스타일이 아니거나 상대방이 본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다며 상황을 흘리곤 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문제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았다. 그 부분을 해결하지 못하면 이후의 소개팅에서도 그들은 사람을 놓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아쉬운 게 몇 가지 있었다.
첫 만남부터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건 불가능하다.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모습을 다 보여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이제 겨우 한 번 만나본 상대를 모두 파악했다는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면접을 아무리 잘 봐도 정작 채용해 보면 고문관일 수도 있듯이 사람은 겪어봐야만 아는 법이다. 애매모호하다는 이유로 소중한 인연이 될지도 모르는 인연을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꽤 많다.
사람들은 너무 처음부터 '완벽하게 빠질 수 있는 사람'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그런 사람을 단번에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쉽게 이루어지기 힘든 부분이다. 그런 로망스를 현실에서 찾다가는 아무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정보가 미흡한 상태에서 내리는 판단은 부실할 수밖에 없다. 너무 최악만 아니라면 몇 번 더 만나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을 만나고 싶은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연인을 잘 만나지 못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좋은 사람을 만나려고만 애쓴다는 것이다. 아쉽게도 처음부터 끌리는 사람을 만나긴 힘들다. 한눈에 내 사람인지 알아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재차 강조하지만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기준치를 낮춰서라도 일단 사람을 만나보는 게 우선이다. 그렇게 노력해도 겨우 만날 수 있을까 말까 한 게 인연이다.
시간 아깝고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기 싫은 건 이해하지만, 바로 그 마음 때문에 진짜 좋은 사람을 놓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인의 입장을 챙기는 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난 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한 번의 만남을 통해 모든 판단을 내린다면 그놈의 시간과 에너지는 아낄 순 있겠지만,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과 인내심을 기르기는 힘들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소개팅에 나오는 사람은 드물다. 상처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수록 그런 경향은 더 심하다. 처음 만난 사람은 그냥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다. 첫 만남에서 취할 수 있는 현명한 처세는 상대방이 가면을 벗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다. 힘들겠지만 그전까지는 판단하고 싶은 충동을 흘려야 한다. 언젠가 만나게 될 내 사람과 잘 지내기 위해 '함부로 생각하지 않는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연인사이로 발전해도, 살을 부대끼며 한 집에서 살아도, 한평생을 함께 한 사이라도 속을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첫 만남에 너무 많은 기대를 하지 않는 게 좋다. 소개팅을 나가더라도 편하게 나를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나가는 게 좋다. 어차피 상대방이 본인의 모습을 보여줄 마음이 없다면 아무리 그 사람에 대해 파악하려고 애써봤자 알아낼 수 있는 것도 딱히 없다.
처음부터 자신을 보여주는 사람은 없다.
진짜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소개팅에 나온 상대방에게 일단은 무조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는 말을 지어내면서라도 대화의 흐름 이어가기', '상대방을 위한 질문하기', '최대한 많이 웃기'등과 같은 노력이라도 해야 한다. 의외로 한껏 꾸민 것에 비해 가만히 앉아서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을 만나러 간 건지 본인을 뽐내러 간 건지 분간이 가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 앞에서는 원래 할 말이 없는 게 정상이다. 하지만 인연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면 말을 지어내서라도 해야 한다. 말주변이 없다고 상대방에게만 기댈 것이 아니라 본인이 할 수 있는 나름의 준비는 하는 게 좋다. 이를테면 유튜브나 책을 통해 대화를 자연스럽게 이어나가는 방법을 미리 공부해 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준비를 해와도 사실 실전에서 써먹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전장에 나가는 건 지러 나가는 것과 다름이 없다.
없는 말이라도 지어내는 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상대방을 위한 질문'을 하는 게 훨씬 좋다. 이때 대답하기 난감하거나 본인이 중심이 되는 질문은 당연히 피하는 게 좋다. 질문을 하더라도 4:1 또는 3:2의 비율로 적절히 자신의 이야기도 섞어주면 더 자연스러울 것이다. 물론 비중은 상대방에게 약간 더 실려야 한다. 질문 리스트를 미리 만들어놓고 숙지하는 것도 방법이다.
원래부터 질문하기는 소개팅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상대방의 호감을 얻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였다. 질문을 받는 것만으로도 상대방은 자신이 충분히 관심받고 있다고 여기게 된다. 사람은 본인에게 관심을 가지는 사람에게는 호의적인 법이다. 적절한 질문을 건네고 호응을 잘하기만 해도 상대방의 마음이 서서히 열리게 될 확률이 높다. 사람이 입고 있는 외투는 거센 바람이 불어도 벗기지 못하지만, 뜨거운 햇빛을 갖다 놓으면 열이 올라 스스로 벗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딱히 준비한 것도 없고 할 말도 없는데 물어볼 것까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차라리 많이 웃기라도 해야 한다. 리액션이라도 커야 그나마 상대방의 꺼져가는 관심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을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은 할 말도 없이 뻘쭘하게 있는데 정색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본인은 정색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겠지만 긴장한 만큼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굳어 있을 확률이 높다. 어떡해서든 웃으려고 애써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최소한 표정이 굳어 있지는 않을 것이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하기
소개팅 자리는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라고 여겨야 한다. 생전 모르던 사람을 만날 수 있게 되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하늘이 내린 선물과도 같다. 평생 함께 할 인연을 만날 수도 있는 중요한 자리가 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 밉보이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은 지나가던 개나 줘버리는 게 낫다. '내 사람'을 꼭 만나고야 말겠다는 태도를 지닌 자가 결국 좋은 사람을 얻게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나는 만나는 사람이 없을 때도 항상 누군가를 기다렸다. 내 앞을 지나가는 기회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놓치지 않겠다는 마음을 고수하면 언제나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난 항상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날 거라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언젠가는 현실로 마주하게 될 그날을 대비하여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을 항상 하며 살았다.
그런 내 눈에 연애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이 없어 보였다. 그들은 말로만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면서 소개팅만 나가면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자세를 취했다. 겉모습은 그렇게도 꾸미면서 상대방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혜안은 갖추지 못했다. 자신의 잘난 부분을 내세우면 마음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어차피 본인은 안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내가 보기엔 전략이 별로였다.
확실한 태도를 지녀야 한다
요는 소개팅을 나가기로 마음먹었으면 진심을 다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다 보여주라는 것이다. 내가 먼저 마음을 열지 않으면 상대방도 자리가 끝날 때까지 마음을 열지 않을 확률이 높다. 본인이 존잘 또는 존예가 아니라면 말이다. 은근히 소개팅을 나가놓고 어찌할 줄을 몰라 대충 시간만 때우다 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놓고 '나랑 안 맞는 것 같다'는 돼도 안 한 핑계를 댄다.
외관만 잘 꾸민다고 능사가 아니다. 어차피 겉모습에서 나오는 매력은 오래가지 못한다. 치장과 자기 보호는 적당히 하는 게 좋다. 호감이 약간이라도 가는 사람이라면 온 힘을 다해 마음을 전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 연애를 하고 싶다면 말이다. 진심 어린 간절함을 표현해도 겨우 한 사람을 얻을까 말까 한 게 현실이다.
난 관심 있는 사람이 생기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기 위해 항상 최선을 다했다. 상대방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는 마음을 내달라고 호소하는 게 아니라, 나의 간절한 진심을 온전히 전달하는 게 최고의 전략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널 생각하는지'에 대한 모든 것을 보여준다면 결과와는 관계없이 최소한 후회는 하지 않을 수 있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상대방의 마음을 얻어낼 수 있는 가장 현명한 방법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진심을 전하는 것도 능력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모른다. 자신의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걸 못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마음을 자기도 잘 모르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자신의 마음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좋은 사람을 만난다고 한들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나 있을까. 진심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을지 시간을 갖고 고민해봐야 한다.
성급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나를 갖다 들이붓게 되면 이어질 법한 인연도 도망갈 것이다. 너무 티 나지 않게 나를 한 방울씩 떨어뜨릴 줄 아는 게 중요하다. 나를 마음에 두지 않던 사람도 나를 조금씩 적시다 보면 어느새 내게 마음을 열게 될 수도 있다. 사람의 호감을 자연스럽게 얻어내려면 화려하게 파고드는 것보다는 서서히 스며드는 게 관건이다.
인연을 만나고 싶다면
나를 제대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온전한 마음을 전달하기만 하면 된다.
다만, 꼭 진심이 담겨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