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없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주변 사람들이 날더러 고집이 세다고 할 때마다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만약 본인의 생각을 자신 있게 주장하는 것을 보고 '고집이 세다'라고 한다면 인정하겠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런 말을 한 거라면 그건 부정할 수밖에 없다. 난 사람들에게 생각을 밀어붙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이 아무리 맞다고 해서 남에게 그걸 강요하는 건 애초에 내 가치관과 어긋나는 행동이다.
주변 사람들 중에서 본인 생각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제시할 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난 비록 앞뒤가 맞지 않을지언정 온전한 나만의 생각을 자신 있게 드러내곤 했다. 그 어떤 주장도 아무 근거 없이 떠벌리지 않았다.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지 못할 것 같으면 아예 말을 아꼈다. 반면에 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해도 내가 고집이 세다고만 몰아갈 뿐이었다.
난 사람들에게 '내 생각이 맞다', '네 생각은 틀렸다'라는 발언 자체를 하지 않는다. 아무리 마음 깊이 확신하는 생각이라도 남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난 그저 사람들에게 '난 이렇게 생각한다'와 같은 형식으로 말할 뿐이다. 허나 사람들은 단호한 분위기로 정갈하고 강직하게 주장하면 뭔가 압도를 당하는 건지 대화의 논점은 흘려 넘기고 인정하기 싫은 내색을 풍긴다. 그냥 들어주기만 하는 게 원래 그리도 어려웠던 것일까.
자기 생각을 주고받는 대화는 맞고 틀리고를 평가하는 게 아니라 가치관을 공유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여태껏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한 번씩 생각을 강하게 어필할 때면 왠지 모르게 내 말을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격당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내 말에 왜 그리도 예민하게 반응을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울 것 같다.
나를 향해 '고집 세다'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굳이 추궁하지도 않았다. 내게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나를 왜곡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과는 건전한 대화를 이어갈 수 없다고 판단했다. 괜히 질질 끌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게 뻔했다. 그런 이유로 비슷한 상황이 생기면 대화의 주제를 돌리거나 아예 말을 아끼게 되었다.
평소에 본인과 세상에 대하여 깊은 관찰을 해 본 사람들은 어떤 대화가 오가든지 간에 자신의 생각을 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은 상대방에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들마다 생각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그래서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저 가만히 들어주거나 상대방의 생각을 듣고 그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담백하게 표현할 뿐이다. 그 이상의 어떤 평가나 추측은 대부분 하지 않는다.
온전한 자기만의 생각이 있고 그에 대한 확신을 품고 사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자신 안에 자기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요즘 다들 살기 어렵다고들 하는데 오히려 자기 자신만 제대로 발견한다면 영혼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존재로 거듭나기 가장 쉬운 시대가 아닐까.
고집을 부린 적도 없는데도 불구하고 자꾸 고집이 세다고만 하는 사람들의 언급이 불편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그들의 말은 오히려 내가 잘 살아가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살포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