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낮잠 자는 게 아깝다

수면시간에 대한 고찰

by 달보


난 유독 낮잠 자는 게 아까웠다. 할 줄 아는 거라곤 딱지치기밖에 없던 꼬마시절에도 뭔가 낮잠 자는 건 하면 안 될 것만 같이 느껴졌다. 시뻘건 대낮에 늘어지게 잤던 기억이 거의 없다. 잠잘 시간에 차라리 친구들과 놀거나 게임을 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어떡해서든 써먹어야 한다는 고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출처 불분명한 욕심은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깊숙이 박혀있었던 걸까. 뭘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그저 뭔가 하고자 하는 욕구가 어릴 때부터 강했다. 겉으로 보면 조용하고 얌전해 보였던 나이지만, 속으로는 얼마나 많은 생각들을 하며 살아왔는지.


난 내 몸한테 미안할 정도로 수면시간에 대해 매우 인색한 편이다. 건강은 건강할 때 챙기라는 아버지와 조언이 사실 그렇게 와닿지는 않는다. 욕심 가득한 나의 심리적 충족감을 수면시간으로 채우기엔 역부족이다. 난 잠을 잘 자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일부터 제대로 해내야 잠을 잘 잘 수 있는 사람이다. 순서가 보통 사람들과 약간 다른 건지는 몰라도, 정신적인 결핍이 채워지고 나서야 건강을 신경 쓸 만한 겨를이 생기곤 했다.


몸이 건강하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신체 하나만 건실하다고 삶이 나아진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특히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일하기 좋은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늘어지게 잘 시간은 아끼고 한두 시간이라도 더 벌어서 성과를 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수면시간 7시간은 무조건 확보해야 한다', '6시간만 자도 충분하다', '4시간만 자면 오히려 집중력이 떨어진다'처럼 절대적인 숫자로 뭔가를 구분 짓는 건 그렇게 신뢰하지 않는다. 모든 수치는 각각의 평균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평균'은 내 앞으로 가져오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수많은 사람들의 공통지표를 내 삶에 적용하기엔 너무 많은 조건들이 일치하지 않는다.


중요한 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는 느낌이다. 남들이 아무리 적당한 수면 시간을 챙겨야 한다고 떠들어도 본인에게 맞는 수면 시간은 직접 알아내는 게 좋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맞는 소리를 떠들어도 그들은 그들만의 기준에서 말하는 것뿐이다. 만약 4시간만 자도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데 지장이 없고, 그렇게 벌어들인 시간으로 계획한 일을 해낼 수 있다면 자는 시간을 줄여도 관계없다고 생각한다.


'충전은 생산하기 위한 것'이다. 세상 깊은 잠을 늘어지게 자놓고 일어나서 그 어떤 것도 생산하지 않고, 오히려 소비만 일삼는 생활로 하루를 가득 채운다면 그건 깊게 잠을 잔 의미가 없다. 소비는 수면으로 충전한 만큼의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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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수면으로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총량이 적어진다고 생각한다. 하루하루 쓰는 에너지가 적정선을 초과하지 않는다면 몸도 굳이 필요 이상으로 에너지를 충전할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내릴 것 같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너무 안 먹어대면 오히려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살이 더 찌는 경우처럼 말이다.


수면, 중요하다. 잠을 잘 자야 내일 할 일을 똑바로 할 수 있고 남은 인생을 건강하게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점도 동의한다. 하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생각해 볼 필요는 있다. 내가 과연 늘어지게 잠을 자는 만큼 에너지를 충전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그리고 잠을 아무리 오래 자도 피곤한 이유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본 적은 있는지. '할 일'이 딱히 없는 사람은 굳이 움직이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일이 없는 사람은 게으름과 무기력증이 자연스럽게 따라붙게 된다.


삶을 관찰하고 개선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 내가 적당히 자고 있는지 아닌지는 스스로 알아내야 하는 인생의 숙제와도 같다. 과연 내가 늘어지게 자야 할 정도로 에너지를 평소에 잘 쓰고 있는지 일상을 돌아보는 건 어떨까.


무리한 충전은 곧 방전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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