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기 싫은 사람은 선택장애라는 갑옷을 두른다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사람들

by 달보


잊을 만하면 자신이 '선택 장애'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보게 된다. 요즘 시대는 선택지가 워낙 많아서 그런 사람들이 그렇게 이상하게 보이진 않는 게 사실이다. 실제로 사람은 선택지가 많으면 기본적으로 혼란스러워한다. 나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선택을 미루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히면 본인 인생까지 불특정 다수에게 내맡기는 꼴을 면치 못할 것이다.


사람마다 뜻은 다 품고 있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하는 건 '하고 싶은 게 있는데 그게 뭔지 모르겠다'와 같은 말이라고 본다. 자신에게 진지하게 질문해 본다면 얻지 못할 답은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과 마주하는 걸 어색하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난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생각하는 생각을 덥석 믿어버리기 때문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망상이 현실이 되어 버리는 비극이 일어나는 것뿐이다. 세간의 명저를 읽어보면 '모든 문제와 정답은 자기 자신 안에 있다'와 비슷한 말이 끊임없이 나오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원래부터 자신이 선택하지 않고 남에게 물어보는 건 편하다. 본인은 그 어떤 짐도 짊어지지 않고 책임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과 얽히지 않은 것들은 쉽게 판단하는 습성이 있다. 뭔가를 평가하게 되면 일종의 쾌락을 느끼며, 자신이 '우위'에 선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가만히 보면 선택장애라고 하는 사람들은 자신과 얽힌 문제에 관해 스스로 결단은 내리기 힘들어하면서, 그런 힘든 일을 남들에게는 쉽게 미루고 그것도 모자라 그 선택에 대하여 평가하기까지 한다.


그들은 그런 상황을 은근히 즐긴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도 없을뿐더러, 질책까지 할 수 있는 입지를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이 반복될 때 그들이 받는 벌은 수가 틀렸을 때 '난 죄가 없고 잘못을 저지른 건 상대방이다'라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그런 착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면 행복하게 잘 살긴 어렵다고 봐야 한다. 본인의 선택에 대해 당당하지 못하고 책임지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뜻깊은 인생을 살아갈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권을 남들에게 내맡기는 만큼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누군가의 의견을 듣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딴지를 건다면 처음부터 자신의 분명한 뜻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저 책임을 지기 싫은 마음에 가만히 지켜만 보다가 뒤늦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그런 행위가 정말 비겁한 태도라는 걸 깨닫지 못한다. 괜히 나섰다가 피해 보기는 싫고, 그렇다고 나와 다른 의견을 따르는 것도 싫은 것이다. 그건 가만히 앉아서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심보를 부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런 태도가 몸에 배면 인생에 대한 책임감은 점점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먹고살기 위해 밖에 나가 돈만 벌어온다고 책임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경제활동은 삶의 수많은 요소들 중 일부에 불과하다. 자신만의 확실한 뜻을 내세워 단호하게 결정하는 힘을 기르지 못한다면, 자신도 모르게 남들 뒤꽁무니만 질질 따라다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자신에게 발언권이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면 당당하게 말할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필요한 말을 꼭 해야 하는 중요한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장애라는 틀로 자신을 가두지 말고, 물어보기만 하는 버릇이 탓을 떠넘기고 싶은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 더불어 본인의 뜻을 다른 사람들에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당당하게 표현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책임감이 충만한 매력적인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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