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가 주입한 일종의 선입견일지도
난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의 마음은 원래부터 변하는 게 당연한 이치인데 그걸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유지하겠다고, 이전으로 돌아가겠다고 하는 것 자체부터가 마음이 돌아가는 원리와 어긋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결과가 아니라 그간의 모든 경험이다.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애를 쓰는 건 경험을 무시하는 행위라고 생각한다. 굳이 초심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건 어찌 보면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에서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진정 초심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결과가 어쨌든 간에 그간 해온 모든 경험으로 초심을 갈고닦아 더욱 현명하게 '다음'을 준비하는 것이다.
기껏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놓고, 그 고생을 시작하게 만든 근원인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그다지 훌륭한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초심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사회문화가 주입한 선입견일 수도 있다. 알고 보면 '초심으로 돌아간다'라는 마음을 먹는 건 아주 쉽고 편한 방법이다. 이를테면 일이 틀어졌다고 해서 전에 없던 새롭고 신선한 마음을 먹는 건, 취지는 좋으나 상당히 번거롭고 막연하다. 반면에 초심으로 돌아가는 건 어떤 미지의 새로운 생각을 애써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속에 명확하게 자리 잡고 있는 이전의 생각을 상기시키면 되기 때문에 그 방법이 훨씬 수월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다 보니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자기 자신과 합의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면 더 나은 결과를 맞게 될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진 채 말이다.
하지만 초심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같은 일이 또 일어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초심으로 돌아가면, 더 좋은 결과를 맞이하기보다는 비슷한 결과를 맞닥뜨리게 될 확률만 더 높아진다. 제대로 반성하는 사람은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는 단지 현재와 미래를 개선하는 재료일 뿐, 그곳에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단지 앞으로 나아갈 뿐이다. 있는 그대로의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전과는 다른 방법으로 꾸준히 시도하는 사람만이 원하는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생각해 보면 애초에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간의 경험이 이미 마음속에 섞여 들었는데, 그 많은 불순물들을 어떻게 걸러낼 것인가.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말처럼 단순하고 가벼운 일이 아니다. 안에 쌓여 있는 것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나하나 건져내며 원상태로 돌아갈 게 아니라 새롭고 깨끗한 것들로 들이붓는 방법이 훨씬 효율적이다. 자신의 기억을 말끔히 지우지 못하는 이상, 초심으로 돌아가려 시도하는 건 그렇게 현명한 방법이 아니다.
초심으로 돌아간다는 건 당장의 현실을 개선한다기보다는, 현실을 회피하는 쪽과 가까운 건지도 모른다. 우리에게 대부분의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건, 과거를 곱씹는 게 아니라 다음을 계획하는 것이다. 과거는 곱씹어봤자 수많은 미련과 후회, 착각, 망상만 만들어낼 뿐이다. 다가올 미래를 위해 과거를 활용하는 건 그나마 나은 방법이지만, 인간심리 특성상 지나간 일들에 마음을 두는 건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받지 못한다.
초심이라고 무조건 맑고 좋은 게 아니다. 초심이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런 경험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어렴풋이 먹게 되는 마음가짐이다. 그런 마음은 미숙할 수밖에 없다. 완벽한 의지를 지녀도 무조건 실수를 하는 게 인간인데, 정립되지 못한 마음가짐으로 임한다면 당연히 생각지 못했던 불상사가 일어날 수도 있다. 경험이 쌓이는 만큼 초심도 다질 필요가 있다. 초심이 변하지 않는다면 더 나은 결과는 기대할 수 없다.
모든 일의 결과는 그 일을 시작했을 당시의 초심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그러니, 더 나은 결과를 바란다면 초심으로 돌아갈 게 아니라 그 초심을 갈고닦아 좀 더 현명한 마음가짐을 먹겠다는 쪽으로 접근하는 게 더 나은 방법이라고 난 그렇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