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씬한 글이 보기도 좋다

최고의 퇴고법은 글을 줄이는 것

by 달보


한동안 퇴고가 뭔지도 모르고 미친듯이 글을 썼다. 어찌 보면 퇴고를 거치지 않은 덕분에 초반에 그리도 많을 글을 쓸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가끔은 글쓰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퇴고를 아예 하지 말라고 조언하고 싶기도 하다. 그것도 글 쓰는 습관을 방해하는 하나의 방해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글쓰기 습관이 생활에 자리가 잡혔다면 퇴고는 필수적으로 해야만 하는 절차다.


퇴고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는 건 좋은 글을 쓰지 않겠다는 말과도 같다. 퇴고를 하지 않는다는 건 본인 글에 대한 애정이 부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퇴고를 하지 않겠다는 건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과도 같다. 퇴고를 건너뛴다는 건 자만심의 늪에 빠져 있는 것과도 같다. 초고는 그리 믿을 게 못 된다. 초고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이 표현된 글이다. 나만 보는 글이라면 관계 없을수도 있지만, 어딘가에 내보이는 글이라면 어느 정도 다듬을 필요는 있다. 내 글을 보며 누군가는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처음 글을 쓸 때는 문장이 그렇게 어색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정신없이 글을 쓰는 단계이기 때문에 자세히 눈여겨 볼 틈이 없어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퇴고할 때쯤 글을 다시 읽어보면 '퇴고하지 않았으면 아찔했겠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고칠 부분이 많이 보인다. 초고가 창틀을 설치하는 과정이라면 퇴고는 창문을 끼워넣고 여닫는 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에서 글을 가장 잘 쓰는 사람이 와도 창틀 하나만으로 바람을 막을 수 있는 작가는 그 어디에도 없다.




특히 퇴고를 할 때는 시간의 힘을 빌리는 게 좋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를수록 내가 썼던 문장이 제대로 보이기 때문이다. 짧게는 하루이틀, 길게는 3,4일 혹은 일주일 정도 묵혀놓으면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고칠 부분이 많으면 그만큼 힘이 빠지기도 하지만, 나머지 잘 쓴 부분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맥이 풀릴 일도 아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이 눈에 밟힌다는 것 자체를 글쓰기 실력이 성장하고 있다는 지표로 삼아야 할 일이다.


퇴고라고 하면 보통 글을 수정한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다. 하지만 내 경험상 퇴고를 할 때 가장 많이 하는 행동은 썼던 글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지우는 것이었다. 애써 써놓은 글의 분량을 단순히 삭제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냥 시원하게 지워버리는 편이 글이 훨씬 더 깔끔하고 좋았다. 삭제하고 삭제하다 보면 분량이 절반 정도로 줄어드는 경우도 있어서 다시 그만큼 채워 넣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도 감내해야 한다. 그러나 그만한 고생을 하는 만큼, 불필요한 요소를 걷어내는 만큼 한 편의 글은 비로소 단단해지는 법이다.


각자의 개성이 뚜렷한 만큼 퇴고하는 방식도 정해진 방법은 없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정말 말리고 싶은 퇴고법은 한 줄 쓰고 한 줄 고치는 것이다. 가끔 가다 보면 한 문장도 빨리 써 내지 못해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어떡해서든 완벽한 문장으로 만든 다음에 넘어가려고 한다. 이건 열정을 쏟아붓는 게 아니라 어리석은 생각에서 오는 미련한 행위라고 본다. 시간은 무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듬는 것도 좋지만, 다듬기만 하고 글을 완성짓지 못하는 건 차라리 안쓰니만 못하다. 그건 일종의 집착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한 문장이라면 그냥 지우는 게 낫다. 그걸 붙잡고 자꾸 새로 고치려고 건드리고 건드리다 보면 결국 글도 헤지기 마련이다. 자신을 너무 맹신하는 마음인건지, 믿지 못하는 데서 오는 건지는 몰라도 그런 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말리고 싶다. 아무리 조잡해 보여도 마음에 있는 밖으로 다 꺼내놓고 보면 그렇게 이상하진 않다. 나무 한 그루의 단점만 꼽자면 하루종일 꼽을 수도 있지만, 숲 전체를 바라보며 그 속에 있는 나무 한 그루를 보면 단점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사람들은 남의 글을 그렇게 정성들여 읽지 않는다. 글쓴이가 아무리 화려한 문장으로 휘갈겨 써봤자 결국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간결하다. 이래저래 말을 길게 늘여뜨려 써봤자 받아들이는 독자 입장에서도 핵심만 건져갈 뿐이다. 나머지는 하나의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나룻배에 불과하다. 그런 것들 때문에 정작 중요한 짐짝에 물을 끼얹어 썩게 만드는 일은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좋다.


퇴고는 별 거 없다. 문장을 적절하게 줄이거나, 불필요한 내용을 잘 지우기만 하면 된다. 퇴고할 때 마음에 들게끔 고쳐지지 않고 하릴없이 시간만 흘러가서 고민이라면, 그냥 지우고 새로 쓰는 걸 추천한다. 아예 전혀 다른 주제의 글을 쓰는 것도 방법이다. 뭐든지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썩는다. 날씬한 글이 보기도 좋고 건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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