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당신을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오. 그때 그날은 잊을 수가 없소. 양쪽엔 귀걸이를 하고 손톱은 빨간 루즈같은 색이 발려져 있었지. 단정하지만 도발적인 똑단발에 쇄골이 시원하게 드러난 것 치고는 꽤나 따뜻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시원해 보이기도 한 옷을 입고 있는 당신의 첫인상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오. 그 아련한 모습은 내 기억 한켠에 제대로 자리 잡았소. 그날 내가 당신에게 첫눈에 반했다고 할 수 있는지는 확신이 서지 않소. 하지만 당신을 보자마자 당신의 마음을 얻어야겠다는 욕망이 강하게 일어난 건 확실했다오. 금세 사랑에 빠지는 사람으로 보이는 건 부끄럽지만, 어쨌거나 당신을 처음 보자마자 느꼈던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소.
나중에 듣기로는 여보가 마스크를 벗은 나의 모습을 보고 크나큰 실망을 했다지만, 여보가 내게 실망하는 동안 난 당신을 왜 그리도 안고 싶었는지 모르겠소. 믿긴 힘들겠지만 한 품에 끌어안고 싶었소. 그 강한 충동을 참는다고 꽤나 애를 먹었다오. 그 욕망은 당신을 처음 인사를 나눈 뒤 커피를 주문하는 동안 느꼈던 찰나의 순간에 느낀 것이오. 지금 생각해도 그때 왜 그런 충동이 일었는지 설명하긴 어렵소. 그냥 당신을 보자마자 감싸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소.
우리가 처음 만나 대화를 나눴던 세 시간 동안 내가 얼마나 마음이 심란했는지 그대는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오. 건전한 모임으로 만났다지만, 그대를 보자마자 흑심을 품었던 나는 알게 모르게 태세전환을 했다오. 아마 지혜롭고 눈치 빠른 당신은 그런 나의 태도를 알아차렸을 거라고 생각하오. 그럼에도 예상시간 보다 더 오랜 대화를 나눴다는 것은 내가 완전히 퇴짜를 맞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오. 물론 소개팅 자리는 아니었지만, 생판 얼굴도 모르는 두 남녀가 처음 만나서 꽤 오랜 시간 동안 쉬지도 않고 대화를 나눈다는 건 흔한 일은 아니잖소.
하지만 당신이 그날 소개팅한 남자와 만나고 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마음에 균열이 살짝 오긴 왔다오.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말보다는 훨씬 나은 소식이긴 했다만, 그대가 얼마나 마음에 들었으면 곁에 완전히 깔끔하게 그 누구도 없었음 했다오. 나도 주제넘는 욕심이 많은 한 명의 어리석은 인간이라오. 그렇다고 손 놓을 생각은 없었소. 난 이상하게 이상한 상황에서 난데없는 자신감이 솟구칠 때가 가끔 있는데 그때 그 순간이 딱 그런 순간이었소. 왠지 내가 마음을 놓지만 않으면 기회는 아직 있을 거라는 직감이 단번에 들었다오. 그래서 대화에 더욱더 집중할 수가 있었소.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우리가 연인으로 급속도로 발전해서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누가 일부러 조작한 것만 같소. 그 수많은 고난과 시련을 겪지 않았다면 결코 올 수 없었던 지역에 오자마자 당신을 만나 이리 인연으로까지 발전했으니 말이오. 예상치 못했던 이별, 뜬금없는 친구의 제안, 의도하지 않았던 모임 이 모든 게 당신을 만나기 위한 장치였다고밖엔 생각이 들지 않소. 우리가 만났던 사연은 감히 한 편의 소설로 써도 될 만큼 기적적이고 낭만적이며 아름다운 추억이라오.
여보, 언젠간 우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한 번 써보고 싶소. 당신과 내가 만났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전하고 싶소. 그저 우리에게 일어났던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기만 해도 누구는 사랑에 대한 의지를 돋우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만 같소. 가뜩이나 연애와 사랑 그리고 결혼에 대해 관대했던 내가 당신을 만나 이리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 덕분에 마치 사랑의 전도사가 될 수도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오. 혼자서도 충분히 잘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지만, 우리처럼 짝을 잘 만나면 혼자 살아가는 세상과는 또 다른 다채로운 삶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소.
여보, 고맙소. 덕분에 세상이 전보다 훨씬 더 밝아졌다오. 그대가 나를 만나준 덕분에 지금 같은 글도 쓸 수 있었다오. 그대는 나의 구세주요. 평생 갚지 못할 은혜를 입은 것만 같소. 이루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삶에 대한 감동을 느끼게 해 준 그대와 나의 관계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소.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지낼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겠소. 사랑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