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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Oct 25. 2023

무례한 직장동료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법

나를 구할 수 있는 건 결국 나뿐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무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새치기를 하고 싶고, 훔치고 싶고, 뺏고 싶고, 남 잘 되는 꼴을 보기 힘들어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다만, 공동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본인을 보호하기 위해 그러지 않으려고 교육받고 애를 쓰다 보니 지금의 문명이 형성된 거라고 본다. 시간이 갈수록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그건 시대적 흐름일 뿐 여전히 무례한 사람은 많고,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시대적 흐름 따위는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만약 본인에게 해가 된다고 여겨질 정도로 무례한 사람이 있다면 피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차마 그럴 수 없는 환경이 몇 군데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직장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있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별종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한다. 사실 개인적인 경험 상으로는 내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했다. 불친절하고 상식을 벗어난 사람도 분명 있었지만, 거의 대부분은 다 좋았다. 다만 무례한 사람들이 유독 자극적이고,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많이 끼칠 뿐이다. 그래서 더 돋보이는 경향도 없잖아 있는 것 같다. 여튼 무례함은 비단 직원들 만의 문제는 아니다. 무례한 직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조직도 상당한 피해를 끼친다는 걸 아래 영상을 보고 나서 더 확실히 깨달았다. 특히 '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려는 의향이 감소한다'는 점이 신선했고 많이 공감됐다. 직원도 직원이기 이전에 한 명의 고객이기 때문이다.




무례함이 기업에 미치는 피해

- 무례한 행동이 회사에 대한 인식을 바꿈 42%
- 회사의 재이용(재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됨 40%
- 조직이 직원에 대한 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 65%
- 조직의 가치관에 의문이 듦 45%
- 그 회사의 제품과 서비스를 사용하려는 의향이 감소 35%

출처 :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
영상 : 가인지캠퍼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당황했던 것 중 하나가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다 잘되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열심히'의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자, 기본 중에 기본이었다. 다들 열심히 산다. 누구나 열심히 할 수 있는 자질은 지니고 있다. 다만 그럴 만한 의지와 동기가 없을 뿐이다. 특히 열심히의 문제를 갉아먹는 것 중 하나가 인간관계다. 특히 직장 내 인간관계는 참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힌다. 피가 섞인 가족, 함께 한 추억이 깃든 친구관계마저 일순간에 틀어지고 서로 상처를 주기 마련인데, 직장에서 만난 사람이 못살게 구면 그만큼 큰 스트레스도 없다. 능력도 인성도 부족한데 나보다 먼저 입사했다는 이유로, 직급이 높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알게 모르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아랫사람들이 윗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기껏 힘들게 입사했는데 사람 잘못 만나서 퇴사를 고민하는 것만큼 억울한 일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직한다고 해서 인간관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옮기고 옮겨도 이상한 사람들이 끝없이 나타나는 경험을 하게 될 수도 있다. 모든 건 기회비용이 따르기에 옮기는 만큼 커리어에 스크래치도 생기고, 본인 멘탈도 무사하지 못하다.


회사 차원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지만 쉽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는 문화 때문인 건지 뭔진 몰라도 나라나 조직이나 단체가 내리는 조치들은 형식적인 것들이 많아서 약간 과장하면 대부분은 쓸데없고, 쓸모없다. 결국 본인 문제는 본인이 알아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골치 아픈 문제일수록 뿌리를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답을 찾을 수 있을까.




1. 내 생각 바꾸기


사실 무례한 행동 자체가 기분을 나쁘게 만들진 않는다. 누군가 특정 행동을 했을 때, '무례하다'라고 받아들이는 해석에서 안 좋은 감정이 일어난다. 그리고 무례하다고 해석하는 것의 기준은 본인이 스스로 정한 것들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분위기와 문화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반말은 원래부터 기분 나쁜 말이 아니다. 반말은 그저 존칭이 아닌 말일뿐이다. 반말이 기분 나쁜 건, '저 사람은 내게 반말을 해선 안 된다', '저 사람은 내게 반말을 함으로써 날 무시한다' 등과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들을 의심하지도, 사유하지도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반말하는 상대방은 기분을 나쁘게 하는 매개체일 뿐, 그 자체가 될 순 없다. 반말이란 표현의 형태일 뿐이자, 존칭의 존재여부로써 성립되는 개념이다. 만약 반말 자체가 인간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성질이 있다면, 존칭 개념이 없는 나라는 서로 치고 박고 싸웠어야 한다. 


물론 상대방을 미워하는 마음에, 괴롭히고 싶은 마음에 대놓고 반말을 하거나 은근히 알게 모르게 돌려서 낮춰 말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그런 의도는 전혀 받아줄 필요도, 곱씹어 볼 필요도 없다. 나만 허락하지 않으면 그 정도는 얼마든지 흘려 넘길 수 있다. 반말해선 안 될 사람이 반말했을 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반응까진 어떻게 조절할 수 없어도 그 뒤에 따라오는 해석만 달리 한다면 최소한 이전만큼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방의 무례함 때문에 기분이 나빠지는 과정을 자세하게 나눠서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납득하고 써먹을 수 있는 개념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본인 멘탈의 컨디션을 남에게 맡기는 순간, 기분은 항상 주변환경에 휘둘리며 살게 될 것이다.



2. 상대방의 요구사항만 건지기


무례한 사람도 알고 보면 결국 어떤 메시지를 내게 보내고 있는 것이다. 모든 무례함은 소통의 문제라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은 단순한 것도 배배 꼬아서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한 동물이다. 모든 무례함은 저마다의 요구사항이 들어있다. 다른 건 한 귀로 흘려버리고 요구사항만 받아들이는 연습을 한다면, '내가 해야 할 일'만 떠올리며 정신건강을 지킬 수 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건 정말 귀한 능력이다.


무례함은 그저 충동을 참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 '그래도 된다'는 생각에서 오는 것, 단순한 습관에서 오는 것일 뿐 상대방의 무례함은 어찌 보면 나와 그렇게 깊은 관계가 없다. 나만 받아들이지 않으면 업보는 상대방에게 오히려 배로 쌓인다. 그 점을 감안하면 시원하게 흘려버리는 것이 무례한 사람에게 제대로 복수하는 거라 여길 수도 있다.



3. 내려놓기


솔직히 외부적인 요인을 하나하나 해결하다 보면 어느 정도까지는 유의미한 효과를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애도 써야 하고 맘처럼 잘 되지도 않는다. 모든 건 기회비용이 들어간다. 무례한 사람한테 신경 쓰고 스트레스받는 만큼 내 시간과 에너지는 고갈되고 생명력은 더 빠르게 소진된다. 굳이 나의 수명을 깎아내리면서까지 그 사람에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아무리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곤 하지만, 본인이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대부분 해결이 불가능한 문제도 아니다.


이럴 때일수록 오히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좋아하는 일,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게 가장 확실한 대책일지도 모른다. 삶의 방향이 확실히 정해진 사람은 쓸데없는 일에 쉽게 말리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평소 중요한 일에 몰두하게 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곳에 신경 쓸 여력 따윈 남아있지 않다. 달리 말해 무례한 사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건, 그런 사람 때문에 신경이 쓰이고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여지가 남아있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흙탕물을 제거할 땐 찌꺼기를 건지는 것보다 맑은 물로 채우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하지만 숨이 막힐 정도로 날 괴롭히고 옥죄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하게 말하는 것도 방법이다. 의외로 무례해 보이는 많은 사람들은 자기 딴엔 악의가 없는 경우가 많다. 아니면 그 자리를 벗어나는 것도 방법이다. 고통받고 있는 자신을 위해서 시원하게 이직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리 어렵게 취직했다고 한들 직장생활을 하기 위해 회사를 다니는 게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없던 병이 생길 정도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선 사실 내가 위에서 언급한 방법도 다 쓸데없다. 일단은 자기부터 살리고 보는 게 우선이다.


대개는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벌이를 하기 위해 회사를 다닌다. 이왕이면 더 좋은 조건에서 더 나은 혜택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하고 싶으니 그 많은 사람들이 경쟁을 벌이는 것뿐이다. 하지만 그렇게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갔다고 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남들보다 더 나은 조건을 포기하지 못해서 자신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일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그렇게 함부로 결정할 게 아니다', '넌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하고 싶겠지만 대부분은 본인이 뭔가를 내려놓지 못하는 데서 오는 문제로 인해 끙끙 앓는 경우가 많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다. 그 누구보다도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는 자신이건만, 어디 귀신이라도 쓰인 것마냥 뭔가를 지키기 위해, 해내기 위해, 잃지 않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건 그만둬야 한다.


세상에서 가장 무례한 건, 무례한 사람을 아무 생각 없이 마음에 들여놓고 다시 내보낼 방법을 끝까지 찾아보지 않는 자기 자신이다. 결국 나를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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