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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03. 2023

일본 오사카 여행을 다녀오며 다시 한번 깨달은 것

해외여행 백 번 가는 것보다 더 좋은 것


오사카가 유독 사람들이 많다 보니 어딜 가든 사람들을 피해 다닐 일이 많았다. 눈을 똑바로 뜨고 앞을 잘 보고 다니면 웬만해선 사람들과 부딪힐 일이 없긴 했다. 근데 일본 사람들은 살짝 비켜가는 정도만으로도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항상 했다. 거의 한 명도 빠짐없이 누군가를 비켜갈 때면 그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계속 그런 상황을 마주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맞은편에서 오는 사람과 아슬아슬하게 지나칠 때면 '스미마셍'이라는 말을 내뱉곤 했다. 그래서 일본 사람들은 참 예의가 바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날 내가 지하철에서 목격한 장면은 일본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를 흔들었다. 노약자석을 웬만하면 비워놓는 우리나라 지하철(대구 지하철) 풍경과는 다르게 젊은 사람들이 당연한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런 건 충분히 이해가 갔다. 사실 나도 평소에 노약자석을 꼭 무조건 비워놓는 관습 때문에 앉을 수 있는데 안 앉는 문화가 약간은 아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기를 안고 있어서 손잡이를 잡았다가 놓쳤다가를 반복하며 바로 서 있는 것도 힘들어 보이는 아주머니를 빤히 보고서도 전혀 비켜줄 낌새도 보이지 않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때 바로 앞에 앉아있던 젊은 사람들만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그런 장면을 몇 번 더 보고 나니 이미지가 살짝 굳어지는 듯했다.


확실히 여행 3,4일 차가 되니 나도 많이 힘들었는지 메모해 둔 게 별로 없다. 평발인 내가 하루에 20,000보씩 걸으면서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니다 보니 발바닥에 데미지가 누적 됐는지 조금만 걸어도 발바닥이 으리으리했다. 난 보통 많이 걸으면 다리는 아프지 않고, 발바닥만 유독 뜨겁고 으리으리해지는 편이다. 총 4박 5일 동안의 여행동안 3일 차부터는 집에 갈 때까지 발바닥이 아팠다. 그만큼 많이 돌아다니긴 했지만 그런 것치곤 마음에 와닿는 곳이 몇 없긴 하다.




이번 여행을 통틀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소소한 일상을 내가 얼마나 좋아하는지.


난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리는 유명한 관광지보다도, 으리으리한 오사카성보다도, 구름까지 닿을 것만 같은 높디높은 전망대보다도,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미신이 깃든 곳보다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돌덩이보다도, 오사카의 상징인 도톤보리의 글리코상보다도, 평점 높은 맛집보다도, 전 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놀이동산 보다도.


지나가는 고양이, 베란다 건조대에 걸려 있는 빨랫감, 동네 허름한 놀이터,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 신호가 바뀌지도 않았는데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하는 사람들, 유니폼 쫙 빼입고 열정적으로 교통정리하는 아저씨들, 밖에서 봐도 친절함과 자부심이 돋보이는 택시기사들, 화려한 코스프레 차림으로 아무렇지 않게 식당 앞에서 웨이팅 하고 있는 사람들, 살짝 스치기만 해도 스미마셍을 외치는 사람들, 깔끔한 길거리, 바닥에 새겨진 일본어, 골목길 주차된 자동차들, 색다른 모양의 쓰레기통, 자판기, 뽑기, 허름하지만 깔끔하게 잘 보존되어 있는 낡은 집들, 일본 땅 위의 하늘과 노을, 2층집들, 아침 지하철에서부터 영단어 책을 보며 공부하는 학생들, 그 옆에 깔깔거리며 수다를 떠는 여학생들, 바깥으로 보이는 공장, 열린 창문 사이로 눈인사를 주고받았던 할아버지, 그 아래 골목을 걸어가는 할머니 등이 가슴에 깊게 남았다.





인파 속에 파묻혀가며 힘들게 오다녔던 일본의 유명관광지를 다시 보기 위해서라면 난 다시 일본에 갈 생각이 없다. 하지만 지금도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일본의 흔한 일상 풍경을 다시 보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다시 갈 의향이 있다. 잔잔하고 슴슴한 풍경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건, 내게 있어서 만큼은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매력적으로 와닿는 이색체험이기 때문이다.


내가 왜 산책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사색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하늘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노을을 좋아하는지, 내가 왜 자연을 좋아하는지 그리고 내가 왜 평소에 행복감을 자주 느끼는지 일본을 다녀오면서 다시 한번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다. 누구는 여행을 즐겁게 다녀오면 또 가고 싶어 진다지만, 난 여행을 갈 때마다 더 이상의 여행은 굳이 필요 없다는 생각만 되려 강해지곤 한다. 많은 시간을 마련하고, 많은 돈을 쓰고, 많은 사전공부를 바탕으로 체험하는 여행에서 얻어지는 쾌감은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쾌감에는 전혀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여행은 충분히 좋았지만, 일본을 체험하며 느낄 수 있었던 잔잔한 감동은 오늘 지금 여기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더 적은 비용으로 더 편안하고, 더 진하게 말이다. 역시 새벽 일찍이 하루를 시작해 읽고, 쓰고, 사유하며 아내와 소소한 담소를 나누는 평범한 일상을 보내는 게 내겐 언제나 최고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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