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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Nov 27. 2023

현장에 있다 사무직에 와보니 가짜노동이 판을 친다

가짜 노동을 진짜 노동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어쩌다 보니 사회생활의 시작을 현장직으로 시작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현장에서 보냈다. 인테리어 현장, 기술직 현장, 공장 등 현장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부분의 일들은 거의 다 경험해 본 것 같다. 그런 내가 1년 전부터는 사무직으로 직종을 옮겨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현장직과 사무직의 차이점을 참 많이 느끼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가짜 노동이다.


물론 현장이라고 해서 가짜 노동이 없는 건 아니다. 백화점 공사같이 사람들이 넘쳐나는 현장에서는 안 보이는 곳에서 담배만 피우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도 있고, 기껏 하루종일 일했더니 엉뚱한 작업을 했던 바람에 다시 다 뜯어내는 일도 다반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규모가 작은 팀 단위로 움직이는 곳에선 가짜 노동을 할래도 하기가 힘들다. 실제로 내가 목수일을 했었을 땐 결과물이 그때그때 바로 나오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작업량과 결과물의 질에 따라서 일당의 오르내림이 달려 있기 때문에 일을 대충 할 수도 없었다. 일당이 만 원만 올라가도 연봉으로 따지면 몇 백만 원의 차이가 나다 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뛰어다니며, 작업 디테일을 스스로 고민해보지 않을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그에 비해 사무직은 환경이 많이 달랐다. 사무직 업무 특성상 가짜노동을 할 만한 여지가 현장보다는 훨씬 많은 것 같았다. 일단 업무를 처리하는 과정이 불투명하다. 경우에 따라서 업무를 처리하는 절차가 복잡하면 미루기도 쉽고 책임을 남에게 떠넘길 수도 있다. 쉽게 말해 몰래 일 안 하고 딴짓하기가 수월하다는 말이다. 그리고 칼퇴가 보장되는 회사는 퇴근시간만 되면 퇴근할 수 있으니, 어떡해서든 시간만 대충 때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발생한다. 반면에 야근을 밥 먹듯 하는 회사는 어차피 열심히 해도 야근을 해야 되니 충분히 시간 안에 할 수 있는 일도 미루거나 대충 하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지는 게 현실이다.




가인지캠퍼스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 바쁘게 사는 게 자랑스러운 이상한 사회! 가짜노동과 진짜 노동을 구분하라!'의 영상을 시청하면서 진짜 노동과 가짜 노동을 생각하다 보니 우리 팀장님이 떠올랐다.


https://www.gainge.com/contents/videos/2926


매일 혼자 사무실에 남아서 야근하는 우리 팀장님을 예로 들면, 혼자 세상 바쁘시다. 겉으로만 보면 회사일을 혼자 다 하시는 것 같다. 안타까운 건 고생하시는 것치고는 정작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팀장님에 비해 업무경력이 훨씬 낮은 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 확연히 들어오는 게 있다. 그건 바로 팀장님은 '일하기 위해서만' 일한다는 것이다.


우리 팀장님은 업무능력 자체는 매우 뛰어난 편이지만(특히 기억력만큼은 가히 독보적이다), 집중력이 너무나 좋은 나머지 한 가지에 꽂히면 다른 건 전혀 신경 쓰지 못하는 타입이다. 팀장님은 전형적인 숲을 보지 못하고 눈앞의 나무 한 그루만 패는 스타일이었다. 당장 오늘 안에 끝내야 할 일을 하다가도 난데없이 날아온 메일 한 통에 마음이 사로잡혀서 한참 하던 일도 까먹는 경우는 다반사다. 중간에 쉬는 시간도 없다(옆 사람은 정말 죽어난다). 가끔 보면 메일의 내용은 읽지도 않으시고, 다짜고짜 첨부파일부터 열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혼자 하루종일 붙잡고 계실 때도 많다.


기한 안에 완수가 불가능한 일이면 못한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협조요청을 하거나, 결과물의 퀄리티는 좀 떨어지더라도 잔가지들은 쳐내며 작은 것들은 좀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팀장님은 그런 생각을 아예 못하는 분 같았다. 그저 야근으로 어떡해서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시는 분이다. 죄 없는 몸과 함께 일하는 팀원들만 죽어날 뿐이다. 본인은 누구보다도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그에 맞는 결과물을 제 시간 안에 다 해내지 못하는 일이 잦다. 그러니 회사나 거래처 입장에선 답답할 뿐이다. 난 이런 게 가짜노동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런 팀장님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일하는 목적'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일하는 목적에 따라서 업무를 진행하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목적은 정시에 퇴근해서 글 쓰는 시간을 벌기 위함이다. 난 승진을 원하지도 않고, 상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없다. 달리 말해 현재 다니는 직장에서 내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


내 관심사는 오직 퇴근 후의 여가시간을 확보하는 것뿐이다. 제시간에 퇴근을 해야 남는 시간에 글을 쓰거나 아내와 오붓하게 저녁시간을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로서의 삶을 꿈꾸고 있는 내게 현재의 직장은 잠시 거쳐가는 정거장에 불과한 곳이다. 그런 곳에서 게으름 피우느라 업무를 제때 처리하지 못하는 바람에 야근하게 되는 불상사는 최대한 마주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업무의 질보다는 완료해야 하는 일을 제때 완수하는 것에 좀 더 신경을 기울이는 편이다.


아무리 회사에 애정이 없어도 할 일을 제대로 마무리짓지 않고 퇴근하는 건 양심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개운하지가 못하다. 찝찝하지 않게 정시에 바로 칼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할 일을 제대로 끝내놓고 퇴근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해야만 되는 일이라면 게으름 피울 시간에 대충이라도 시작해 놓고 보는 게 성향상 더 맞기도 했다. 일단 시작하고 보는 것도 나름 노하우라면 노하우였다. 무슨 일이든 한 번 손을 대기 시작하면 오히려 멈추기가 힘든 관성의 법칙을 활용한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고 보면 진짜 일 자체를 하기 싫어서 하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게 아닐까 하고 가끔 생각한다.




가짜노동이 발생하는 근본적인 원인은 사람마다 일하는 목적이 달라서 그렇다고 본다. 면접 볼 때는 회사가 요구하는 어떤 일도 최선을 다해 할 것처럼 굴던 사람도 일단 입사가 확정이 되는 순간, 모든 입장은 자기 위주로 생각하기 마련인 게 사람이다. 회사에 별다른 뜻이 없고, 업무도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면 가짜노동을 하게 될 확률이 더 높다. 이유는 단순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인 하나쯤 대충 일해도 회사는 여전히 잘 굴러가기 때문이다.


악의적으로 가짜노동을 일삼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하려고 갖은 노력을 하지만 알고 보면 가짜노동인 경우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몸은 몸대로 고생하면서 질책은 질책대로 받게 되는 억울한 상황을 피하기 힘들다.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효율성을 한 번쯤은 자체적으로 점검해 보는 게 좋지 않을까.


경험상 시간을 잡아먹는 일들의 특징은 단순한 반복작업인 경우가 많았다. 달리 말해 대단한 일도 아닌데, 단순히 양이 많아서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나 같은 경우 반복작업을 해야 하는 일이라면 웬만해선 곧이곧대로 하지 않는다. 무조건 편법부터 찾아보는 편이다. 구글링을 통해 검색하다 보면(보통 이런 건 네이버로는 잘 안 나온다)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이 훌륭한 대안을 마련해 놓은 자료가 엄청나게 많다.




특히 반복작업일수록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하게 되면 절대적인 작업량보다 체감상의 업무량이 곱절로 불어나기 마련이다. 일의 양은 그대로이지만, 사람의 상태가 들쑥날쑥하기 때문이다. 컨디션도 왔다 갔다 거리고, 기분도 그날 그때의 상황과 환경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게 사람이다. 능률이 일정하지 않은 인간에게 반복작업이란 그리 적절치 않은 업무형태라고 본다.


컴퓨터의 모든 기능은 효율적이지 못한 인간의 능률을 보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매크로나 함수 같은 기능은 폼으로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런 훌륭한 기능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은 게 현실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젊은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컴퓨터 활용능력이 뛰어난 편이 아니다. 아주 간단한 함수조차도 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각자 직장을 다니는 목적은 각자 다르겠지만, 누구든지 간에 굳이 안 해도 될 일을 꾸역꾸역 해가며 고생하는 일만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피해야 하지 않을까. 어쨌든 가짜노동이라도 그만큼의 시간과 에너지는 소비할 수밖에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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