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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an 30. 2024

나도 한때는 현장이 답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게 맞는 일은 확실히 따로 있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빨간 날 다 쉬는 평범한 사무직 직장인으로서 일을 시작한 지는 불과 채 2년도 되지 않았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에 뛰어든 후로 거의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은 대부분 바깥 현장에서 일을 했었다. 


실내 건축현장, 야외 건설현장,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까지 모두 경험해 봤다. 현장에서 근무하면 어디서나 땀 흘리는 건 기본이었다. 그중 압도적으로 가장 많은 땀을 흘리며 일했던 시절은 단연코 목수일을 했었을 때다. 


아침 7시 30분부터 오후 5시까지가 근무 시간이었다. 그 사이에 20,000보는 우습게 찍었다. '걸음', '빠른 걸음', '뛰어다님'의 비율이 1:3:6 정도였다. 어중간하게 걸어 다녀서는 그날의 할당량을 채우기 힘들었기에 알아서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내가 속했던 목수팀은 원룸, 아파트, 주택을 주 종목으로 공사하는 팀이었다. 달리 말해 질보단 양을 우선시하는 팀이었다. 하지만 실력도 상당히 좋았던 큰 형님의 입맛에 맞추느라, 양은 양대로 쳐내면서 일도 꼼꼼히 해야만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기술은 여느 팀들보다 괜찮게 배울 수 있었지만서도. 


방 한 칸의 천장을 목골조 짜고 석고보드 치고 몰딩으로 마무리하는 데까지는 혼자서 30분이면 족했다. 길어져도 1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방 한 칸에서 1시간 이상 있으면 귓속에 욕방망이가 날아오곤 했다). 처음엔 30분 만에 방 한 칸의 천장을 쳐야 한다길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뛰어가며 조금씩 배우다 보니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그만큼 태어나서 그리도 땀을 많이 흘리며 일해본 적이 없었다. 겨울에도 현장에 출근하거나 퇴근할 때만 잠시 겉옷이 필요했지, 일을 시작하지만 하면 열이 금방 올라서 옷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한 겨울에도 반팔차림으로 일했었다. 손이 어는 것을 제외하면 여름이나 겨울이나 땀이 비 오듯 흐르는 건 매한가지였다. 


특히 여름은 '살이 빠지고 있는 것 같다'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땀이 너무너무 많이 흐르긴 했었다. 난 안경을 끼고 있었기에 땀방울이 자꾸 안경에 묻고 그 위에 톱밥과 먼지까지 달라붙어서 악조건이었다. 안경에 땀이 워낙 많이 흘러서 고개를 살짝만 내려도 안경이 잘 흘러내렸다. 방지책으로 안경다리에 노란 고무줄을 돌돌 말아서 끼고 다녔었다. 


그때 그렇게 땀범벅으로 일하다 보니 생전 처음으로 해 본 생각이 있었다. 그건 바로 '눈썹에게 감사하다'는 것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줄줄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눈썹에서 다들 맺히지 않았다면 난 일하는 게 거의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그 방대한 양의 땀들이 눈으로 바로 흘러 들어오지 않고 눈썹이 한 번 걸러 주었기에 그나마 작업이 가능했었다. 


그때 그런 생각이 처음 들었을 때 눈썹이 고맙기도 하고, 인체구조가 새삼 신기하기도 했어서 감탄 섞인 목소리로 형님들에게 눈썹에 대한 말을 했더랬다. 하지만 듣도 보도 못한 말을 듣는 시늉을 보이더니, 그날부터 난 '특이한 놈'으로 낙인이 찍혔다.


난 현장에서 일했던 탓에 미세먼지가 하늘을 노랗게 뒤덮어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그보다 훨씬 더 독한 곳에서 마스크도 끼지 않은 채 산소와 먼지를 51:49의 비율로 들이마시며 꽤 장시간동안 일을 했었기 때문이다.


톱밥과 먼지가 구분되지 않는 곳에서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황사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아마 지금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들 중에서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을 거라고 확신한다.


사실 일할 때는 현장에 먼지가 얼마나 얼마나 많은지 체감하기 힘들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지만 해가 중천에 떠오를 때쯤 가느다란 햇살 몇 줄기가 현장 내부를 내리쬐면 그제야 실감이 난다. 눈부신 햇살 사이로 숨이 막히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먼지 덩어리들이 그대로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그 충격적인 장면도 계속 보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때문에 '인간은 생각보다 강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건강한 걸지도 모르고.




땀 흘리던 목수시절을 떠올리다 보니, 이런저런 추억들이 많이 떠올라서 가볍게 미소가 지어진다. 그렇다고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얼마나 체력적으로 힘든 곳인지, 높은 일당을 받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세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 거친 일을 어린 나이에 일찍 경험해 본 건 참 다행이었다. 훗날 인생이 뜻대로 되지 않은 시기가 도래할 때, 높은 일당 보고 혹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현장에 발 담그게 될 일은 최소한 없을 테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겐 돈도 많이 주면서 누구라도 받아줄 것처럼 보이는 현장이 '새로운 기회', '마지막 희망'처럼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내겐 다신 돌아가선 안될 곳이 바로 현장이다.


나 또한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면 돈도 많이 벌고 몸이 허락할 때까지는 정년퇴직도 없을 거란 생각이 그곳이 답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곳이 '내 영역'이 아니라는 건 직접 부딪혀가며 일하면서 뼈저리게 깨달았다.


확실히 내게 맞는 일은 다른 곳에 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어제처럼 묵묵히 글을 쓰고 있다.

 

순서가 뒤바뀌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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