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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Feb 15. 2024

악당에게 빌런이라는 타이틀은 면죄부나 다름없다

이분법적인 사고를 하지 않으려는 이유


세상에 나쁜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좋은 사람도 마찬가지다.


나쁜 사람을 누가 정의할 수 있을까. 언제부턴가 옳고 그름으로 세상을 나누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지양하면서부터는 '좋다', '나쁘다'를 정의하지 않고자 노력한다.


서로가 저마다의 이유로 행동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다수가 소수에게 뒤집어 씌우는 누명 중 하나가 '나쁜'이라는 타이틀이 아닐까 한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 혹은 언제부턴가 유행하기 시작한 빌런(Villain)이라는 말 같은 건 사실 살짝 위험하면서도 편협한 단어라고 본다.


가령 누군가를 '좋은 사람'이라고 여기면, 그 사람이 길가에 담배꽁초를 버려도 대수롭지 않게 여길 것이다. 반면에 누군가를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면, 실수로 길가에 휴짓조각 하나라도 흘린다면 천하에 나쁜 놈이라며 손가락질할 게 뻔하다. 좋은 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했던 모습은 온데 간데 없이 말이다.


이처럼 한 사람을 어느 한쪽으로 정의하는 건 다양한 상황에서 오류를 야기할 확률이 높아질 뿐이다. 뇌는 정리된 개념 앞에서 편히 쉴 수 있기야 하겠지만서도.


한나 아렌트는 유대인 학살에 일조한 아돌프 아이히만에 대해 "그 사람을 악마라고 하는 건 오히려 면죄부를 씌우는 일이다"라고 일침하였다. 한 사람을 악마로 여기면 그 사람의 행동이 정당화된다는 게 그녀의 견해였다.


쉽게 말해 "저 놈은 악마의 자식이니까, 나쁜 짓을 벌인 거야!"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고 말아버리는 게 오히려 아돌프 아이히만에겐 더없는 베풂을 선사하는 일이라고 한나 아렌트는 해석한 것이다. 그가 실제로 벌인 수많은 '짓'들이 '나쁜'에 묻힌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라 생각된다.


한나 아렌트의 의도를 너무 어긋나지 않게 파악한 것인지는 감히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든 이분법적인 사고는 위와 같이 현명한 판단과는 동떨어진 방식이라고 본다. 복잡다단한 무언가를 명사로 압축해 버리면 좋든 나쁘든 간에 실체와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 이유로 난 빌런 같은 건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거라고 본다. 언제나 따져볼 만한 건 그 인간이 착한지 나쁜지가 아니라, '상황'과 '원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려 한다.


알수록 묘한 세상에서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과 조화롭고 씩씩하게 더불어 살아가려면, 그나마 그 방법이 최선이라고 그렇게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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