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를 읽고 나서
오랜만에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었다.
원래 난 브런치를 통해 들어오는 메일 중 도서리뷰제안은 받지 않았다. 이전에 블로그를 할 때 리뷰를 대가로 책을 몇 번 받아보니, 대부분의 책들이 시간 내서 읽기 아까울 정도로 별로였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번에도 도서리뷰제안 메일을 보자마자 거절부터 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스치듯 눈에 들어온 책제목이 이내 마음을 흔들었다.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
다나카 히로노부라는 일본인 작가님이 쓴 책이었다. 일단 글쓰기에 미쳐 있는 사람으로서 글쓰기에 관한 책이라는 점도 내 관심을 끄는데 한 몫하긴 했지만, 확실히 책제목이 크긴 컸다. 어떤 책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 '한 번 읽어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여하튼 그렇게 출판사의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고, 책은 로켓배송을 방불케 할 정도로 빠르게 집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리고 이틀 만에 책을 다 읽었다.
읽기 편하다.
책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의 한줄평이다. 글쓰기라는 주제를 다루는 책이었음에도 가장 먼저 드는 소감이었다. 읽는 중에도 느꼈고, 마지막장을 덮고 나서도 그랬다.
다나카 히로노부라는 작가님이 단순하고 깔끔하게 쓰는 편인지, 해당 책을 편집한 출판사가 일을 잘하는 건지는 몰라도 책의 전체적인 구성이 깔끔해서 마음에 들었다. '여백'을 적절히 잘 활용한 것 같았다. 그만큼 부담스럽지 않게 술술 읽히는 책이었다.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창문 없는 궁전 같은 느낌이 드는 책은 읽기가 싫다.
난 어쩌면 이 책의 제목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동질감을 느꼈을지도 모를 일이다. 책을 읽어 보니, 내가 평소 생각하는 글쓰기에 대한 가치관과 부합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다.
"글을 쓰며 살아가는 매일매일은 괴롭지만, 즐겁다."
"나는 글 쓰는 일로 그럭저럭 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테크닉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내용은 좀 어설프더라도 글쓴이의 생각과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글, 자신의 느낌에 충실한 글.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글'이다."
"그와 동시에 무엇보다 나 자신을 위해 썼다. 거듭 강조하지만 모든 글은 자신을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난 글쓰기책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글과 관련된 환상으로부터 조금씩 깨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들이 지니고 있을 법한 글쓰기에 대한 착각을 짚어주기에 충분한 내용들이 많았다.
글쓰기에 별다른 테크닉이 없다는 점, 아무리 어설프더라도 자기 자신답게 쓴 글이 가장 좋은 글이라는 점, 모든 글은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는 것이라는 점 등이 그러했다. 난 이 부분들에 대하여 몸소 느낀 만큼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이다.
내 생각에 글쓰기책을 찾는 사람들이 가장 얻고 싶어 하는 건, 아마도 '어떻게 하면 글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이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그런 비결은 글쓰기 강의나 글쓰기책에서 찾을 수 있는 게 아니다. 만약 그런 게 가능했다면 글 쓸 시간에 글쓰기책을 읽거나,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글쓰기 강의를 듣는 게 더 나았을 것이다.
직접 경험해 보니 더 좋은 글을 쓰기 위한 지름길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남는 시간에 한 편의 글이라도 더 써 보는 게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도 빠른 길이었다. 글쓰기에 관한 거의 모든 책이 '일단 써라', '많이 써라'라는 내용으로 귀결되는 건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책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에는 글쓰기와 관련된 대단한 기술 같은 내용은 실려 있지 않다. 단지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라고 생각하는 다나카 히로노부 작가님만의 글쓰기 철학이 담백하게 실려 있을 뿐이다. 읽기 편한 책인 만큼 내용도 단순하다. '진실은 단순하다'라는 세간에 떠도는 말에 신빙성이 있다고 여기는 나로서는, 결코 가벼운 책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읽어볼 만하다.
자신만을 위한 진심 어린 글을 쓰고픈 사람이라면.
1년 내내 글쓰기에만 미쳐 있었더니 어느새 내 브런치에는 600편이 넘는 글이 쌓여 있었다. 분명 하루 한 편의 글만 써서 올렸던 것 같은데, 언제 그렇게 많은 글이 누적된 건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여하튼 그 과정에서 난 글쓰기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는데, 첫 번째는 '환경설정'이고 두 번째는 '생각으로 거르지 않기'였다.
1. 환경설정
글쓰기에 단 하나의 비결이 있다면, 글쓰기를 시작할 수 있도록 주변환경을 세팅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노트북 메모장에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글을 이어서 쓸 수 있도록 첫 문장을 쓰고 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각자 처한 상황은 다르고 방법은 생각하기 나름이니 본인만의 방법을 찾는 게 좋다. 조회수 많이 나오는 글 쓰는 법 따위를 공부할 시간에 글쓰기를 쉽게 할 수 있는 환경설정을 연구하는 게 글쓰기에는 훨씬 더 도움이 될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엔 새벽기상이 그렇다. 새벽 일찍 일어나 머리만 감고 24시간 카페로 출동하는 것 자체가 글쓰기를 위한 환경설정이다. 원래는 집에서도 잘 썼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새벽에 일어나도 내 방에서는 쓰기가 힘들어져서 카페로 장소를 옮겼다. 덕분에 포기하지 않고 수많은 글을 쓸 수 있었다.
2. 생각으로 거르지 않기
시간을 비우고 환경을 제대로 갖추어서 글쓰기를 시작했음에도 진행이 잘 되지 않는 이유는 자체적인 검열 때문에 그렇다. '이런 문장을 써도 될까', '내용이 좀 유치한 것 같은데', '문맥이 맞지 않아'따위의 생각들이 손가락을 멈추게 만들기 때문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글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생각 때문에 방해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차라리 엉망진창인 글이라도 일단 쓰고 보는 게, 생각만 하느라 애써 마련한 황금 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때문에 난 일단 쓰고 본다. 아무리 잘 썼다 생각한 글도 퇴고는 무조건 해야 한다. 퇴고를 하기 위해서라도 제한된 시간 안에 쓰레기 같은 글일지언정 써내는 게 중요하다.
마음에서 덜어낼 만한 내용들이 한참 남았는데도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필터링을 핑계로 자꾸 브레이크를 건다면, 글쓰기는 매우 힘들어질 것이다. 글쓰기든 뭐든지 간에 '할 만하지 않으면' 결국 포기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글을 쓸 때만큼은 생각으로 필터링을 하지 말고, 글쓰기로 필터링을 했으면 좋겠다. 아닌 것 같다는 생각으로 손가락을 멈추고 볼 게 아니라, 아닌 것 같은 내용이라도 무조건 타이핑을 하고 보라는 말이다.
생각하느라 흘러가버린 시간은 영영 돌아오지 않지만, 키보드의 백스페이스는 도망가지 않는다.
이래나 저래나 가장 좋은 건, 역시 본인이 직접 글을 쓰면서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글쓰기로 승부를 보고자 하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글 쓰는 행위를 습관으로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뻔한 말 같지만 이보다 더 확실하고 정답 같은 건 없다고 확신한다.
글쓰기는 하면 할수록 너무 좋은 취미라고 생각한다. 되도록이면 많은 사람들이 본인만의 사상이 담긴 이야기를 많이 써 보면서 글쓰기만의 참재미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여긴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니까.
책 '내가 읽고 싶은 걸 쓰면 된다'의 내용 중 가장 인상 깊고, 아마 꽤 오랜 시간동안 마음 깊이 박혀 있을 거라 생각되는 문장을 남기며 본 글을 매듭지어볼까 한다.
"글 잘 쓰는 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밝힐 필요가 있다. 남김없이 밝히겠다."
많은 사람이 읽어주고, 웹이나 SNS에서 인기를 끌고, 효과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고, 무척이나 재미있고, 알기 쉬운 글을 간단하게 쓰는 방법."
"그것은 짧게 말하면, 이렇다."
그딴 건 없어.
맞다.
정말 그딴 건 없다.
본 책을 제공해 주신 인플루엔셜 출판사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덕분에 글쓰기에 관한 좋은 책 잘 읽을 수 있었고, 예정에 없던 한 편의 글을 이렇게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