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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Mar 11. 2024

우리 부부가 사극톤으로 대화하는 이유

PART 2. 저희 부부는 이렇게 살아요 ep.2


어느 날, 아내의 제안으로 인해 우린 하오체로 대화를 주고받기 시작했다. 하오체란,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것이다.


"여보, 밥 먹었어?"가 아니라,

"여보, 밥 먹었소?"라고 하는 것.


"아침에 수영 다녀왔어"가 아니라,

"아침에 수영 다녀왔다오"라고 하는 것.


"된장찌개 맛있다."가 아니라,

"된장찌개 맛이 훌륭하오."라고 하는 것.


아내가 하오체를 제안한 건 다름이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다툼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사이가 돈독할지라도 살다 보면 예기치 못한 마찰이 일어날 수 있는데, 만약 그런 상황에서 하오체를 쓰면 갈등이 크게 번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게 아내의 생각이었다.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땐 약간 당황스러웠지만, 관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이라는 데 수긍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오체는 텍스트로만 보면 노부부의 대화 혹은 사극톤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써보면 기대 이상으로 편하고 안정적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꽤 재밌다. 하오체의 기본 속성은 존댓말이라서 반말할 때보다는 서로 존중하는 느낌이 든다. 오글거리지도 않는다. 더불어 너와 내가 동등한 선상에 있는듯한 중립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한다. 처음엔 낯선 말투를 쉽게 적응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이 앞섰는데, 지금은 오히려 일반적인 말투를 주고받는 게 더 어색해졌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관심 가는 사람이 있다면, 연인끼리 하오체로 대화 해보길 추천한다(특히 연상연하 커플이라면 더더욱). 막상 해 보면 의외로 재밌고 편하다. 단, 하오체에 중독되면 일상적인 말투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지도 모르니 그 점은 주의를 바란다.




우리 부부는 큰 다툼 한 번 없이 오늘까지도 잘 지내오고 있다.  물론 가치관의 결이 비슷한 게 평화유지에 있어서 적지 않은 지분을 차지하긴 한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한 지붕 아래 두 사람이 살을 맞대며 함께 살아가는데, 계속 사이좋게 지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꾸준한 노력이 따라야 한다. 하오체는 그런 노력 중 일부에 불과하다.


독서, 글쓰기, 마음공부, 저축, 인간심리를 탐구하는 등 언제나 성장하기 위해 매 순간 열심히 사는 건 나 자신의 욕망과 결핍을 채우기 위함인 건 맞지만, 그에 못지않게 원만한 결혼생활을 위한 것도 꽤 크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좋은데 꼭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야겠냐고 한다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데 있어서 상대방에게 잘 보이려고 갖은 애를 쓰는 것보다는, 내가 먼저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게 더 큰 비중이 실린다고 보기 때문이다.


요컨대 행복과 평안을 바랄수록 나부터 올곧게 살아가는 건 기본값이라고 생각한다.


야속하게 흐르는 세월에 따라 모든 상황은 변하기 마련이다. 그에 맞게 견고했던 마음도 언젠가는 변하고야 말 것이다.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상대방과 잘 지내려는 마음가짐 하나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경험상 인생은 원하는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 때문에 부부사이가 좋을 때일수록 관계를 지킬 수 있는 보호장치를 더욱더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건강할 때 보험을 들어야 이득을 많이 보는 것처럼 말이다. 




가게만 차려놓고 테이블에 앉아 한없이 티비만 쳐다보고 있으면, 돈을 벌기는커녕 오던 손님도 나가떨어지기 십상이다. 부부관계도 마찬가지다. 깊은 사랑을 토대로 평생 함께 하자는 약속을 맺었을지언정, 넋 놓고 살던 대로만 살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할 확률이 높다. 


하오체를 쓰거나, 집안일 역할분담을 하거나, 주기적으로 진솔한 대화의 시간을 가지는 등의 시스템을 부부관계 사이에 조금씩 끼워 넣다 보면 미래에 일어날 법한 문제들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각자가 노력하는 만큼 서로 간의 신뢰가 두터워지는 건 덤이다.


너와 나의 좁힐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단 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기적인 모순덩어리가 본질인 인간의 속성을 이해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변질되는 관계의 온도를 감당하기엔 꽤 버거울지도 모른다.


금실 좋은 부부는 초심을 잃지 않고 서로를 끝까지 사랑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의 특징을 이해하고 예고 없이 찾아오는 갖가지 상황을 유연하게 대처할 줄 아는 지혜의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본다.


부부끼리 사이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건 의외로 사랑과는 그리 큰 연관이 없다. 가정을 위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태도, 서로를 위해 기꺼이 헌신할 수 있는 자세, 그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주변환경에 달려 있다.


바람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열정과 의지, 갈대처럼 이리저리 휘둘리는 마음 따위에 기대기보다는, 사소한 규칙이라도 정하는 게 부부사이의 평화를 유지하기엔 더없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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